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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
작성일 | 2022-08-25 08:48:45 | 조회수 | 40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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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면서 기쁜 소식을 들은 적이 있습니까? 어떤 소식이었습니까? 중요한 시험에 합격했다는 소식이나 회사에서 승진했다거나 수술이 잘 되었다는 소식 등은 기쁜 소식임에 틀림 없습니다. 성경은 이 세상에서 들을 수 있는 소식 중에 가장 기쁜 소식을 전하는 책입니다. 성경에서는 그것을 '복음(福音, good news)'이라고 합니다. 특별히 신약성경에서는 네 명의 저자가 이 기쁜 소식을 전하기 위해 복음서를 기록했는데 마태복음과 마가복음, 누가복음, 요한복음이 그것입니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이 지상 최대의 기쁜 소식에 별 관심이 없는 것은 참으로 안타깝기 그지 없는 일입니다. 심지어는 기독교인들조차 복음보다는 다른 소식을 더 좋아하는 경향이 농후합니다. 성경에서 우리는 기쁜 소식보다는 슬픈 소식을 먼저 듣습니다. 최초의 인간이었던 아담과 하와가 죄에 빠졌다는 소식입니다. 그로 인해 이 땅은 가시덤불과 엉겅퀴를 내게 되었습니다. 남자는 수고하고 땀을 흘려야 식물을 먹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여자에게는 해산의 고통이 크게 더해졌습니다. 그 뿐만이 아니라 그들은 낙원에서 쫓겨났습니다. 그들은 이제 에덴의 동쪽에서 살게 되었습니다. 낙원에서 추방되어 살던 땅의 이름은 '방랑'이라는 뜻을 가진 '놋'땅이었습니다. 이렇게 우리 사람은 낙원을 잃어버렸습니다. 그리고 방랑과 고통의 삶이 시작 되었습니다. 죄의 세력이 우리를 장악했고 우리는 알게 모르게 사탄과 죄의 종이 되고 말았습니다. 죄로 인한 고통은 삶의 모든 영역에서 깊고도 넓게 나타났습니다. 인간과 자연, 인간과 인간, 그리고 인간과 하나님의 관계에서 많은 문제점과 어려움이 발생했습니다. 오해와 답답함, 이기심과 욕심, 경쟁과 다툼, 폭력과 지배, 훼손과 정복, 반항과 반역 등으로 얼룩졌습니다. 눈물과 탄식, 자연재해와 사고, 질병과 죽음이 찾아왔습니다. 이 모든 것이 하나님을 떠난 결과이고 죄의 결과였습니다. 마음 한 편에서는 선을 원하나 원함일 뿐이고 마음대로 되지 않는 자신을 보며 우리는 절망합니다. 죄를 안 지을 수도 없고 이미 지은 죄를 어떻게 해결할 수도 없습니다. 아무리 노력해도 도저히 답이 없는 자신을 우리는 발견합니다. 죄로 인해 이렇게 고통하고 있는 사람에게 하나님이 실재하신다는 소식은 더 큰 고통입니다. 하나님의 완전한 율법과 계명은 쓰러져 있는 우리로 하여금 다시 일어날 엄두도 못 내게 합니다. 겨우 용기를 내어 지난 날은 묻어두고 앞으로라도 착하게 살겠다고 다짐에 다짐을 해 보지만 번번이 실패합니다. 살면 살수록 죄에 죄를 더할 뿐입니다. 우리는 탄식합니다. 오호라, 우리는 곤고한 자들입니다. 우리는 사망의 몸을 입고 있는 것입니다. 누가 이 사망의 몸에서 우리를 건져 낼 수 있을까요? 그렇습니다. 우리 힘으로는 결코 이 사망의 먹이사슬에서 벗어날 수 없습니다. 누군가가 우리를 건져주지 않는다면 말입니다. 이것이 복음입니다. 이것이야말로 더 없이 기쁜 소식입니다. 나를 죄에서 건져 줄 자가 있다는 소식 말입니다. 죄의 형벌과 죄의 권세에서 나를 해방시켜 줄 구원자가 오셨다는 소식입니다. 나의 모든 죄값을 지불하셨다는 소식, 그래서 하나님과 내가 화목할 수 있다는 소식. 이것이 바로 복음입니다. 그 분을 믿고 영접하면 이제 더 이상 결코 정죄하지 않겠다는 소식. 그런 사람은 하나님께서 자신의 자녀로 삼아주시겠다는 소식. 하나님의 심판대에 세우지 않겠다는 소식. 그 놀라운 소식을 성경은 전하고 있습니다. 그 구원자가 나 대신 심판을 받으셨기 때문입니다. 성경은 이처럼 놀라운 소식을 전하고 있는데도 사람들은 참 이상합니다. 이 기쁜 소식보다는 슬픈 소식을 더 좋아합니다. 복음보다는 율법을 더 좋아한다는 말입니다. 하나님께서 다 해 놓으셨다는 것보다는 내가 무언가를 해서 인정받고자 하는 것을 더 좋아합니다. 그러나 성경은 이렇게 말합니다. "에티오피아 사람이 자기의 피부 색깔을 바꿀 수 있느냐? 표범이 자기의 반점들을 다르게 바꿀 수 있느냐? 만약 그렇게 할 수만 있다면, 죄악에 익숙해진 너희도 선을 행할 수가 있을 것이다."(예레미야 13:23, 새번역성경) 사람들은 누군가가 나를 구원해주는 것보다는 내가 나를 구원하고자 하는 성향을 더 가지고 있습니다. 이는 우리 사람들이 보상심리를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율법, 곧 계명은 우리에게 절망만을 더해줄 뿐입니다. 율법은 선한 것임에 틀림 없지만 우리를 좌절케 합니다. 우리가 그것을 지킬 힘이 없기 때문에 그러합니다. 우리는 슬픈 소식을 먼저 들었습니다. 그것은 기쁜 소식을 들려주고자 함이었습니다. 이제 구원자가 오셨고 자기의 생명을 바쳐 우리를 구원하는 일을 하셨습니다. "다 이루었다"라고 선언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만족하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하실 일은 다 하셨습니다. 이제 남은 것은 우리의 선택 뿐입니다. 세상에서 가장 크고 기쁜 소식을 받아들일 것인지, 아니면 그 소식을 거부하고 여전히 슬픈 소식을 붙들고 죽도록 애쓸 것인지를. 순간의 선택이 영원을 좌우한다는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형제자매 여러분, 내가 여러분에게 전한 복음을 일깨워 드립니다. 여러분은 그 복음을 전해 받았으며, 또한 그 안에 서 있습니다. 내가 여러분에게 복음으로 전해드린 말씀을 헛되이 믿지 않고, 그것을 굳게 잡고 있으면, 그 복음을 통하여 여러분도 구원을 얻을 것입니다. 나도 전해 받은 중요한 것을 여러분에게 전해 드렸습니다. 그것은 곧, 그리스도께서 성경대로 우리 죄를 위하여 죽으셨다는 것과, 무덤에 묻히셨다는 것과, 성경대로 사흗날에 살아나셨다는 것과, 게바에게 나타나시고 다음에 열두 제자에게 나타나셨다고 하는 것입니다."(고린도전서 15:1-5, 새번역성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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