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죄와 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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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2022-08-20 17:04:59 조회수 259
  '인과응보'나 '정의'라는 말이 시사하듯 죄에는 반드시 벌이 있습니다. 그리고 있어야 합니다. 만약 심판이 없다면 이 세상의 공의는 무너지고 말 것입니다. '인과응보'라는 말 자체가 불교에서 나온 말이며 불교에서도 지옥을 이야기 하듯이 기독교에서도 심판과 지옥을 경고하고 있습니다. 이에 대해 신약성경 히브리서 9장에서는 이렇게 말합니다.
  "한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해진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
  죽음이 끝이 아니고 죽음 이후에 심판이 있다는 경고입니다. 만약 죽음이 끝이라면 '내일 죽을 터이니 먹고 마시자' 할 것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삶은 우리의 양심이 허락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심판이 없다면 억울한 일을 당한 사람들은 너무나 원통할 것입니다. 

  심판은 두려운 것입니다. 그러므로 심판을 피할 수 있는 방법이 있다면 우리 모두는 어떻게 해서라도 그렇게 하고자 할 것입니다. 심판을 피할 수 있는 몇 가지 방법을 알려드리겠습니다.
  첫째 방법은 죄를 하나도 짓지 않으면 됩니다. 둘째는 죄를 지어도 하나님께 들키지 않으면 됩니다. 셋째는 하나님도 죄를 지어 거룩한 분이 아니면 됩니다. 넷째는 하나님이 계시지 않으면 됩니다. 마지막으로 하나님이 당신보다 먼저 죽든지 아니면 당신이 죽지 않으면 됩니다. 

  종종 자신은 죄를 하나도 짓지 않았다는 사람을 만납니다. 주로 시골에서 순박하게 사시는 할머니들이 그렇게 말씀하십니다. 이야기를 들어보면 정말 양심껏 사셨다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어떤 분들은 지금까지 개미 한 마리도 죽인 적이 없다는 말씀까지 하십니다. 그러나 온전한 빛 가운데 계신 하나님의 관점에서 볼 때 이 세상에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습니다. 양심에 손을 얹고 정직하게 자신을 돌아보면 누구나 이를 부인할 수 없을 것입니다. 양심의 가책을 한 번도 느껴보지 않은 사람은 없을 것이니까요. 그러니 첫번째 방법은 불가능하다는 것을 인정할 수 밖에 없습니다. 

  완전범죄를 꿈꾸는 사람들도 종종 있습니다. 그리고 미해결 사건들이 종종 있음을 우리는 압니다. 범죄 수법이 교묘해지는 만큼 수사기법도 발전해 갑니다. DNA검사 등 과학수사는 말할 것도 없고 지금은 CCTV나 자동차 블랙박스의 눈을 피할 수 있는 곳이 없을 지경입니다. 핸드폰의 위치추적과 통화녹음, 인터넷 사용내역 조회나 신용카드의 결제내역 조회까지 하게되면 우리 모두는 거의 벌거벗은 것이나 다름이 없습니다.
  그래도 이런 감시망을 뚫고 신출귀몰하게 도망을 다니는 사람도 간혹 있기는 합니다. 그러나 그것도 어디까지나 이 땅에서의 일일 뿐입니다. 사람은 속일 수 있어도 하나님은 결코 속일 수 없습니다. 그러니 두번째 방법도 불가능함을 알 수 있습니다. 

  똥 묻은 개가 겨 묻은 개를 나무란다는 속담을 우리는 압니다. 이 속담처럼 자신이 심각한 부도덕에 빠져 있으면서 다른 누군가를 책망하는 어떤 사람이 있다면 그는 비난을 피할 수 없을 것입니다. 이것을 알기에 범죄자들은 종종 자신의 죄에 경찰이나 검사 또는 권력자를 공범으로 끌어들이기도 합니다. 공범까지는 아니더라도 그들의 약점을 잡아서 이용하기도 합니다. 그렇게 하여 그들로 하여금 정의의 칼을 휘두르지 못하게 합니다.
  불완전한 사람들이 사는 세상이니 그럴 수도 있습니다. 이처럼 심판자이신 하나님께 심각한 결점이나 비난받을 만한 죄가 있다면 하나님은 사람을 심판할 수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일은 결코 기대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사람이 아니시기 때문입니다. 그분은 완전하시며 결코 흠이 없으신 신이시기에 그러합니다. 그러니 세번째 방법도 가능하지 않습니다. 

  사람들은 대체로 간섭을 싫어합니다. 사춘기의 청소년들을 들먹이지 않더라도 아기들만 보아도 우리는 이를 알 수 있습니다. 걸음마를 하고 몇 마디 말만 할 줄 알아도 아이들은 자기 주장을 하기 시작합니다. '예'보다는 '아니오'를 먼저 배웁니다. 그리고 부모를 향해 소리를 지르며 땅바닥에 드러누워 발버둥을 치기도 합니다. 좀 더 자라면 가출을 감행하기도 합니다. 간섭 받지않고 자기 마음대로 살고 싶은 것입니다.
  양심을 거스려 신이 없다고 우기는 것도 같은 맥락일 수 있습니다. 신이 없어야 심판의 두려움에서 벗어날 수 있고 마음이 편하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러나 신이 없다면 우리 사람은 물론이고 그 어떤 하등 생명체 하나도 존재 할 수 없습니다. 질서정연한 우주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리고 어떤 존재를 아무리 없다고 해도 있는 존재가 없어지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네번째 방법도 기대할 수 없겠습니다. 

  몸을 죽이고 그 후에는 능히 더 못하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말라고 예수 그리스도는 말씀하셨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 사람은 아무리 흉악해도 누군가를 죽이는 것 그 이상은 못합니다. 물론 여기서의 죽음은 몸의 죽음을 의미합니다. 인간이 만든 모든 흉기와 무기는 우리의 몸만을 죽일 수 있지 영혼에겐 어떠한 상해도 입힐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육체를 갖고 계신 분이 아니라 영이시므로 어느 누구도 해할 수 없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영원 전부터 계셨고 앞으로도 영원히 계시는 분이십니다. 그러니 하나님의 죽음을 기대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입니다. 반면에 물질은 영원하지 않습니다. 모든 물질은 시간이 지남에 따라 질서가 무너지고 노후되며 부패합니다. 이것은 열역학 제2법칙인 엔트로피 법칙으로 입증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육체를 가진 사람은 결국 늙고 병들며 죽습니다(물론 영혼은 죽지 않습니다). 그러니 마지막 다섯번째 방법도 가능하지 않다는 결론에 도달합니다. 

  우린 심판을 피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마련하신 단 한 가지 방법을 빼곤 말입니다. 그것을 성경은 기쁜 소식, 즉 복음이라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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