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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다림2
작성일 | 2022-08-12 15:02:15 | 조회수 | 26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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탕자가 아버지의 유산을 다 탕진하고 거지의 몰골로 돌아왔습니다. 그리고는 이렇게 고백합니다.
"아버지, 내가 하늘과 아버지께 죄를 지었사오니 지금부터는 아버지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감당하지 못하겠나이다." 아버지는 아들의 말을 괘념치 않습니다. 그의 몰골이 어떠해도 상관 없습니다. 재산을 얼마나 남겼는지에는 관심조차 없습니다. 아버지는 제일 좋은 옷을 내어다 입히고 손에 가락지를 끼우고 발에 신을 신겼습니다. 그리고는 살진 송아지를 잡았습니다. 아버지의 기쁨은 그 무엇으로도 표현할 수 없었습니다. 그것은 죽은 아들이 다시 살아난 것과 같았습니다. 그래서 아버지는 잔치를 벌였습니다. 그때 맏아들이 밭에 있다가 집으로 돌아오고 있었습니다. 집 안에서는 흥겨운 풍악과 춤추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맏아들은 한 종을 불러 이 무슨 일인가를 물었습니다. 종은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당신의 동생이 돌아왔으매 당신의 아버지가 건강한 그를 다시 맞아들이게 됨으로 인하여 살진 송아지를 잡았나이다." 이 말을 들은 맏아들은 노를 발했습니다. 그러고는 집에 들어가려하지 않았습니다. 아버지가 나와서 권했을 때 아들은 이렇게 불만을 쏟아냈습니다. "나는 이렇게 여러 해를 두고 아버지를 섬기고 있고 아버지의 명령을 한 번도 어긴 일이 없는데 나에게는 친구들과 함께 즐기라고 염소 새끼 한 마리도 주신 일이 없습니다. 그런데 창녀들과 어울려서 아버지의 재산을 다 삼켜 버린 이 아들이 오니까 그를 위해서는 살진 송아지를 잡으셨군요." 아버지는 둘째 아들을 향해서 오랫동안 노심초사 기다렸습니다. 마침내 기다리던 그 탕자가 돌아왔습니다. 이제는 됐다며 아버지는 졸이던 마음을 내려놓고 기뻐합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맏아들이 집에 들어오지 않습니다. 아버지도 기뻐 어쩔 줄 모르고 종들도 기뻐하는데 정작 형은 전혀 기뻐하지 않습니다. 심지어 자기 동생을 동생이라고 부르지도 않습니다. 그의 마음에는 '아버지의 이 아들'에 대한 분개와 아버지에 대한 불만이 가득 차 있습니다. 그리고 또 하나 그의 마음을 가득 메우고 있는 것이 있는데 그것은 자기 의에 기반을 둔 교만입니다. 그래서 아버지는 또 기다려야 합니다. 이제는 맏아들을 향해서 오래 기다려야 합니다. 그의 교만과 자기 의가 깨어지기를. 집 나간 탕자에게서는 이것이 깨어졌지만 집 안에 있던 맏아들에게서는 이것이 오히려 더 단단해지고 있었습니다. 아버지는 느낍니다. 맏아들이 더 아버지의 마음을 아프게 한다는 것을. 그가 더 탕자임을. 누가복음 15장 1-3절을 보면 이 이야기는 자칭 의인의 삶을 살고 있다고 자부했던 종교인들을 향해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신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 말씀은 또한 우리들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그러므로 이제 나를 돌아보아야 합니다. 내가 곧 맏아들이 아닌지, 아니면 둘째 아들인지를 말입니다. 다른 것은 없습니다. 둘 중의 하나입니다. 당신은 어느 탕자입니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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