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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다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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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2022-08-12 12:44:00 조회수 204
  누군가를 오랫동안 기다려 보셨습니까? 얼마나 기다려 보셨습니까? 한 시간? 두 시간? 초고속 인터넷시대에 살고 있는 이 세대는 느긋이 기다리는 것과는 거리가 먼 것 같습니다. 요즘 많은 청소년들이 컴퓨터나 스마트폰 화면이 1,2초만 늦게 떠도 참기 어려워하는 것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 시대에도 여전히 오래 오래 참고 기다리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들 중의 대표를 하나 고른다면 아마 '부모'일 것입니다. '어버이 친' 자(親)는 기다림을 표현한 글자입니다. 글자를 들여다보면 나무 위에 올라서서 고개를 들어 멀리 쳐다보는 어버이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 분은 누구를 그렇게 목이 빠져라 기다리고 있을까요? 부모가 되어보신 분들은 아마 짐작하실 것입니다. 

  한 탕자가 있었습니다. 그는 부모의 간섭을 벗어나 자기 마음대로 자기의 삶을 살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아버지께 요구합니다. "아버지, 재산 중에서 제게 돌아올 몫을 주십시오." 그의 아버지는 재산을 나누어 두 아들에게 주었습니다. 며칠이 안 되어 둘째 아들은 자기 재산을 다 정리하여 부모를 떠나 먼 나라로 갔습니다. 거기서 그는 허랑방탕하게 살며 재산을 다 허비하고 말았습니다. 

  그는 궁핍한 가운데 어떤 사람의 집에서 더부살이를 해야만 했습니다. 주인은 그를 들로 보내어 돼지를 치게 하였습니다. 그는 배고픔을 달래기 위해 돼지가 먹는 쥐엄 열매로 배를 채우고자 했습니다. 그러나 그것조차 주는 자가 없었습니다. 이렇게 '먼 타향에서 나는 주려죽는구나'라는 마음이 들 때 아버지 집이 생각났습니다. 참으로 면목이 없었지만 그는 아버지께로 돌아가기로 결심합니다. 

  이는 성경 누가복음 15장에 나오는 이야기입니다. 20절에는 이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아직도 거리가 먼데 아버지가 그를 보고 측은히 여겨 달려가 목을 안고 입을 맞추니"
  우리는 여기서 아버지의 마음을 읽을 수 있습니다. 아들이 아버지를 발견한 것이 아닙니다. 아버지가 먼저 아들을 발견했습니다. 아직도 거리가 먼데도 말입니다. 어떻게 이것이 가능했을까요? 

  아마 아버지는 아들이 집을 나간 이후로 날마다 나무 위에 올라가 먼 곳을 두루 두루 살폈을 것입니다. 얼마나 많은 세월을 그렇게 했는지 모릅니다. 마침내 기다리고 기다리던 아들이 터벅터벅 다가옵니다. 이를 본 아버지는 모든 체면을 내던지고 달려갔습니다. 그리고는 목을 안고 입을 맞추었습니다. 이후의 구절은 이러합니다. 

  "아버지는 종들에게 이르되 제일 좋은 옷을 내어다가 입히고 손에 가락지를 끼우고 발에 신을 신기라. 그리고 살진 송아지를 끌어다가 잡으라. 우리가 먹고 즐기자. 이 내 아들은 죽었다가 다시 살아났으며 내가 잃었다가 다시 얻었노라 하니 그들이 즐거워하더라." 

  참 감동적인 이야기입니다. 아버지가 죽기도 전에 미리 유산을 달라고 해서 챙겨 집을 나간 탕자 이야기는 바로 하나님을 떠난 우리의 이야기입니다. 이 땅의 부모가 자식을 측은히 여겨 목을 빼고 기다리듯이 하나님도 우리를 향하여 그렇게 하십니다. 아버지의 마음을 더 힘들게 하지 말고 지금 돌아가야겠습니다. 아버지께서는 오늘도 우리를 기다리고 계십니다. 나무 위에 서서. 기린의 목으로. 

  "그러나 여호와께서 기다리시나니 이는 너희에게 은혜를 베풀려 하심이요 일어나시리니 이는 너희를 긍휼히 여기려 하심이라."(이사야 3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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