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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군, 넌 날 수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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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2022-08-10 16:55:44 조회수 214
  어느 일간지에 이런 만평이 실린 적이 있었습니다. 공군 병사가 해군 병사에게 묻습니다. "야, 해군, 너 수영 할 줄 알어?" 그러니 이번엔 해군이 공군에게 되묻습니다. "야, 공군, 넌 날 수 있어?"
  참 재미있는 만평입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아마 저처럼 이렇게 생각할 것입니다. 해군은 모두가 수영을 잘 할 것이라고 말입니다. 그런데 저는 위의 만평을 보면서 깨달았습니다. 날 수 없어도 공군이 될 수 있듯이 수영을 할 줄 몰라도 해군이 되는데 아무런 문제가 없다는 것을. 

  실제로 조사에 의하면 해군의 약 60%가 수영실력이 낙제점이라고 합니다. 해군에서는 수영실력을 다섯 등급으로 분류하고 있다고 합니다.
  1등급은 500m 이상 수영이 가능하고 인명구조 지원이 가능한 실력입니다. 2등급은 300m 이상 수영할 수 있거나 3가지 영법이 가능한 실력입니다. 그리고 3등급은 100m 이상 수영이 가능하거나 두 가지 영법이 가능한 사람입니다. 4등급은 5분 동안 가라앉지 않고 부유할 수 있거나 하나의 영법으로 50m를 수영할 수 있는 경우이며, 마지막 5등급은 수영 불능자입니다. 해군에서는 4등급과 5등급을 낙제점으로 보는데 그 비율이 10명 중 6명 정도가 된다는 이야기입니다. 

  그게 무슨 해군이냐고요? 네, 그래도 해군 맞습니다. 왜냐하면 전투는 수영 실력으로 하는 것이 아니니까요. 전쟁이 터지면 공군은 전투기로 싸우고 해군은 군함으로 싸웁니다. 공군이 나는 것이 아니라 전투기가 날고 공군은 그 전투기를 타고 전투를 합니다. 마찬가지로 해군이 자신의 수영실력으로 바다를 누비며 싸우는 것이 아니라 군함이 그렇게 합니다. 해군은 그 군함을 타고 전투를 하는 것이지요. 해군이 아무리 수영을 잘 해도 군함이 없으면 싸울 수 없습니다. 공군이 아무리 높이뛰기나 멀리뛰기를 잘 해도 전투기가 없으면 공군이랄 수 없습니다. 

  천국에 가는 원리도 이와 동일합니다. 사람이 아무리 수영을 잘 해도 군함같을 수는 없습니다. 올림픽에서 5관왕을 차지한 수영 선수라 할지라도 태평양을 헤엄쳐 건너 갈 수는 없습니다. 마찬가지로 자신의 선행으로는 하늘나라까지 가는 다리를 절대로 놓을 수 없다는 것을 우리는 알아야 합니다.
  성경의 처음 책인 창세기에는 대홍수에 관한 기사가 실려 있습니다. 지금으로부터 약 4,000여년 전에 있었던 전무후무한 홍수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최초의 인간 아담의 10대손 노아가 살던 시대였습니다. 그 때에 사람의 죄악이 세상에 가득했고 온 땅이 하나님 앞에 부패하였다고 성경은 밝혀주고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땅 위에 사람 지으셨음을 한탄하사 마음에 근심하셨습니다. 그리곤 세상을 심판 하기로 결심하셨습니다. 그것은 물에 의한 심판으로 큰 홍수를 내려 모든 지면을 덮어버리는 엄청난 재앙이었습니다. 

  하늘이 열려 40주야에 걸쳐 전 지구에 비가 쏟아져 내렸습니다. 땅 속에서도 큰 깊음의 샘들이 터져나왔습니다. 그렇게 온 땅을 덮었던 물은 만 1년 후에야 걷히고 육지가 드러났습니다. 당시 대부분의 사람들이 심판을 받아 멸망했습니다. 그러나 이 긴 홍수를 이기고 살아남은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한자 '배 선(船)'자가 말해주듯이 그들은 노아의 가족 여덟 명 뿐이었습니다.
  그들은 어떻게 물 위에서 1년을 버텼을까요? 그들 모두가 최고의 수영 선수들이었을까요? 설령 그들이 마이클 펠프스나 박태환보다 수영을 잘 하는 사람들이었다해도 1년 동안이나 물 위에 떠 있을 수는 없었을 것입니다. 더군다나 무엇을 먹을 수도, 잠을 잘 수도 없는 상황이었을테니까요. 

  그들이 살아남을 수 있었던 것은 하나님께서 설계해 주신 배가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 안전한 배가 있는 이상 그들의 수영실력은 아무런 상관이 없었습니다. 그들이 그 배를 타고 있기만 하면 말입니다. 이는 그 당시 사람들 누구에게나 해당되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노아의 여덟 식구 외에는 아무도 그 배를 타지 않았습니다. 문은 오랫동안 열려 있었고 함께 배에 오르자고 노아가 강권했지만 어느 누구도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무엇을 믿었을까요? 그들은 하나님의 심판 경고를 무시하고 믿지 않았습니다. 그들의 불신이 문제였습니다. 오히려 믿은 것이 있다면 그들은 자기의 의와 자신의 판단을 믿었을 것입니다. 혹 누군가는 자신의 수영실력을 믿었을지도 모릅니다. 만약 그러했다면 그는 어리석게도 인간의 수영실력은 50m 길이의 수영장에서나 뽐낼 수 있을 뿐임을 간과했을 것입니다. 태평양 같은 대양에서는 수영실력이 1등급이든 5등급이든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배가 있느냐 없느냐는 것입니다. 그리고 더 중요한 것은 그 배를 타느냐 안 타느냐는 것입니다. 그것이 생사를 결정합니다. 

  노아의 홍수 이야기는 자신의 선행을 의지해서 천국에 입성하고자 하는 사람의 어리석음을 밝히 드러내주고 있습니다. 수영실력 1등급이 노아의 대홍수에서는 아무런 의미가 없듯이, 선행 1등급도 마지막 하나님의 심판대에서는 태양 앞의 호롱불보다 못할 것입니다. 그 심판 앞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우리 대신 십자가에서 이미 심판을 받으신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것 뿐입니다. 노아의 방주는 바로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그림자입니다.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로마서 8: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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