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ke your bible come alive

하나님의 말씀을
생생한 감동으로 전하다

목회자 칼럼

  • HOME
  • 코이노니아
  • 목회자 칼럼

모든 죄를 다 회개하셨습니까?

게시판 상세보기
작성일 2022-08-01 07:59:09 조회수 221
  "실례지만 천국에 갈 수 있는 확신이 있습니까?"
  "열심히 노력하고 있습니다만 아직 부족해서요."
  "어떤 노력을 하고 있습니까?"
  "하나님 말씀을 지키려고 노력하며 또한 열심히 회개하고 있습니다." 

  교회에 출석하고 있는 분들에게 조심스럽게 질문해 보면 흔히 듣게되는 답변입니다. 첫째는 십계명을 비롯해서 성경의 계명들을 지키고자 하는 노력입니다. 다음으로는 지금까지 지은 죄에 대해 다 회개하고자 하는 노력입니다. 그러나 성경은 율법의 행위로는 의롭게 될 수 없다고 분명하게 말씀하고 있습니다(갈라디아서 3:11). (그렇다고 이 말은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 필요가 없다는 말은 아닙니다. 지금 우리는 '어떻게 의롭게 될 수 있는가'라는 점을 말하고 있습니다.)

  회개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언젠가 신문에 이런 기사가 난 적이 있었습니다. 어떤 분이 게릴라에 의해 인질로 잡혔습니다. 총부리 앞에서 며칠간 생사를 넘나드는 고통을 그는 견뎌야 했습니다. 그러나 그에게 있어서 더 큰 고통이 있었는데 그것은 '내가 이대로 죽으면 과연 천국에 갈 수 있을까?' 하는 두려움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며칠 밤을 지새우며 그동안 범했던 모든 죄를 회개했습니다. 그러고나니 마음이 평안해졌고 이제 천국에 갈 수 있겠다는 마음이 들었다고 했습니다. 

  저는 그 간증을 읽으며 참 많이 의아한 생각이 들었습니다. 어떻게 그분은 자신이 지은 죄를 다 기억해 냈을까요? 더군다나 모르고 지은 죄도 많이 있을텐데 말입니다. 기억할 수 있는 죄만 회개하면 되는 것일까요? 모르고 지은 죄도 용서해 달라고 뭉뚱거려 회개하면 되는 것일까요?
  그리고 성경 어디에 지은 죄를 다 회개하면 천국에 간다는 말씀이 있는가요? 허랑방탕하게 살다가 아버지 품으로 돌아온 탕자가 아버지 앞에서 자신이 지은 죄를 다 회개해서 용서를 받았던가요? 십자가에 예수님과 함께 못 박힌 강도는 모든 죄를 회개했기 때문에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낙원에 있으리라는 답을 들었던가요? 

  오히려 성경은 단호하게도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피 흘림이 없은즉 사함이 없느니라."(히브리서 9:22)
  죄 사함은 지은 죄를 회개해서 얻는 것이 아니라 반드시 죄의 대가인 피가 흘려져야 합니다. 피는 곧 생명을 의미하며 죄의 대가는 사망이기 때문입니다. 그 어떤 것으로도 생명과 바꿀 수 없듯이 목숨만큼 귀하지 않은 것은 죄의 값이 될 수가 없습니다.

  "육체의 생명은 피에 있음이라. 내가 이 피를 너희에게 주어 제단에 뿌려 너희의 생명을 위하여 속죄하게 하였나니 생명이 피에 있으므로 피가 죄를 속하느니라."(레위기 17:11)
  그래서 구약시대에는 사람의 죄로 인해 수많은 동물이 피를 흘리고 죽었습니다. 물론 이 짐승의 피는 장차 올 구세주의 피에 대한 그림자였습니다.

  "우리가 곰 같이 부르짖으며 비둘기 같이 슬피 울며 정의를 바라나 없고 구원을 바라나 우리에게서 멀도다. 이는 우리의 허물이 주의 앞에 심히 많으며 우리의 죄가 우리를 쳐서 증언하오니 이는 우리의 허물이 우리와 함께 있음이니라. 우리의 죄악을 우리가 아나이다."(이사야 59:11,12)
  곰 같이 부르짖고 비둘기 같이 슬피 울며 회개할지라도 구원은 멀고 허물과 죄가 그대로 있다고 성경은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이유로 하나님의 본체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피를 흘리시고 죽으셨습니다. 다른 방법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내가 하나님의 은혜를 폐하지 아니하노니 만일 의롭게 되는 것이 율법으로 말미암으면 그리스도께서 헛되이 죽으셨느니라."(갈라디아서 2:21) 

  죄의 값은 눈물이 아니라 피입니다. 찬송가에도 이를 노래하고 있습니다.
  "울어도 못하네. 눈물 많이 흘려도 겁을 없게 못하고 죄를 씻지 못하니 울어도 못하네."(찬송가 544장)
  아이러니하게도 많은 사람들이 이 찬송을 부른 직후에도 죄를 용서해 달라고 울며 부르짖습니다. 이 찬송가의 4절과 후렴은 이러합니다.
  "믿으면 되겠네. 주 예수만 믿어서 그 은혜를 힘입고 오직 주께 나가면 영원 삶을 얻네. 십자가에 달려서 예수 고난 당했네. 나를 구원하실 이 예수밖에 없네." 

  이 말은 회개가 필요 없다는 말이 아닙니다. 성경은 분명히 복음의 두 기둥을 '하나님께 대한 회개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 대한 믿음'(사도행전 20:21)이라고 명시하고 있습니다. 다만 많은 사람들이 '회개'에 대해서 오해하고 있다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지은 죄목을 고백하고 뉘우치는 것도 회개이지만 그것은 회개의 극히 작은 부분에 해당합니다. 성경이 말하는 회개는 삶의 완전한 방향전환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을 떠나 하나님 없이 자신이 주인이 되어 살아오던 삶의 방식에서 떠나 하나님께로 돌아서는 것이 회개입니다. 

  새성서 대사전에서도 회개를 이렇게 정의하고 있습니다.
  "회개는 하나님을 떠나 있는 인간이 그 전 존재를 하나님께 복귀케 하는 행위이다. 회개는 전 인격의 방향전환이다. 하나님에의 복귀이며 또 하나님에의 신뢰의 회복이다." 

  "베드로가 이르되 너희가 회개하여 각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죄 사함을 받으라. 그리하면 성령의 선물을 받으리니"(사도행전 2:38)
  이 말씀에서도 회개는 하나님께로의 돌이킴을 의미하지 죄들을 아뢰는 것이 아님을 알 수 있습니다. 이 말씀에 비추어 볼 때 만일 회개가 그런 죄의 자백을 의미한다면 회개할 때마다 세례를 계속 받아야 할 것입니다. 

  세례도 한 번이요 성령을 받는 것도 한 번이듯이 복음에 있어서의 회개는 하나님께로 방향전환하는 일생일대의 단회적인 사건을 말하는 것입니다. 물론 거듭난 그리스도인이 다시 죄를 지을 때마다 회개를 해야 하지만 이는 거듭남과 관련된 회개와는 다른 차원인 것입니다. 그것은 구원받기 위한 회개가 아니라 하나님과의 교제를 회복하기 위한 회개입니다. 

  사탄에게 속아 우리의 주인이신 하나님을 떠났던 우리들이었습니다. '내 인생은 나의 것'이라는 당돌한 노래를 부르던 우리들이었습니다. 어처구니 없게도 참 주인을 몰아내고 주인 행세를 하며 살던 우리들이었습니다. 마치 우리 자신과 만물을 우리가 만들기라도 한 것처럼 그렇게 뻔뻔스럽게 말입니다.
  이런 우리를 향해 진노하지 않으시고 오래 참고 기다려 주신 하나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무지했던 우리의 영안을 열어주셔서 주와 구주이신 하나님께로 회개하게 인도해 주신 주님을 찬양합니다.

댓글0

이전 다음 글보기
이전글 짧은 침상과 좁은 이불
다음글 이런 사랑을 보셨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