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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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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2022-05-26 16:44:12 조회수 290
  집 옆에 200평 정도의 빈 땅이 있습니다. 땅 주인이 벌금을 내지 않으려고 군데군데 묘목을 심어 놓은 땅입니다. 그러고는 관리를 안 하니 온갖 잡초가 뒤덮고 있습니다. 그 중에서도 칡덩쿨이 단연 으뜸입니다. 칡덩쿨이 묘목을 휘감고 올라 타 나무의 형체가 사라질 정도입니다. 보기에 안스럽기도 하고 또 칡덩쿨이 우리집과 블루베리 밭 쪽으로도 올 기세라서 오늘은 칡덩쿨을 제거하기로 마음을 먹었습니다. 

  나무에 감긴 칡덩쿨을 하나씩 하나씩 끊어내자 축 늘어졌던 나뭇가지가 기지개를 펴듯 팔을 듭니다. 칡덩쿨에 감기고 눌려 부러진 가지도 많습니다. 덩쿨이 얼마나 강하게 나무를 감고 있던지 떼어내기도 어려웠습니다. 전지 가위로 중간중간을 끊어서 벗겨내니 나무에 뱀이 휘감은 것 같은 자국이 선명합니다. 그동안 나무가 얼마나 괴로웠을까 하는 안타까운 마음이 작업하는 내내 들었습니다. 심지어 어떤 나무는 끝내 죽어버린 것도 있었습니다. 이렇게 온갖 죄에 휘감겨 있던 나에게서 죄의 덩쿨을 잘라내고 벗겨주신 주님께 참 감사가 되었습니다. 

  '갈등'이라는 단어는 한자로 이렇게 씁니다. 葛藤. 칡과 등나무를 의미합니다. 이 두 식물은 무언가를 휘감는 성질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유심히 보면 칡은 항상 오른쪽으로 휘감아 올라갑니다. 반면에 등나무는 언제나 왼쪽으로 감습니다. 이런 두 나무가 만나서 얽히면 얼마나 풀기가 어려울까요? 여기서 '갈등'이라는 단어가 나왔다고 합니다. 저는 칡덩쿨을 제거하면서 이 단어를 떠올렸습니다. 

  우리도 이 식물들과 같습니다. 우리 모두는 메타쉐카이어처럼 곧은 나무가 아닙니다. 우리는 칡이기도 하며 또 어떤 때는 등나무이기도 합니다. 칡은 등나무를 향해 이렇게 말합니다. "넌 왜 왼쪽으로 올라가는거야? 나처럼 오른쪽으로 가야 옳은거야!" 등나무는 칡의 말을 도저히 이해할 수도 받아들일 수도 없습니다. 왜냐하면 자기와 자기 동료들은 하나같이 왼쪽으로만 올라갔기 때문입니다. 반대로 모든 칡은 항상 오른쪽으로만 휘감으며 살아왔습니다. 

  누가 옳은 것일까요? 칡일까요, 등나무일까요? 이것은 옳고 그름의 문제가 아님을 우리는 압니다. 굳이 따지자면 둘 다 옳은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그렇게 만드셨기 때문입니다. 틀린 것이 아니고 다를 뿐입니다. 우리는 이 다름 때문에 얼마나 갈등하고 다투는지요!
  그러나 가만히 생각해보면 우리 모두는 다름에 끌려 매력을 느끼고 서로 좋아했던 적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남자는 자기와 다른 여자와 사랑에 빠지고 여자는 또한 자기와 다른 남자에게 그렇게 합니다. 여든 여덟개의 피아노 건반 중 같은 소리를 내는 것은 하나도 없습니다. 만약 하나라도 같은 음을 낸다면 그것은 고장난 피아노입니다. 그런 피아노로는 아름다운 음악을 연주할 수 없습니다. 

  피아노 건반이 다 다른 음을 내도록 만들어진 것은 아름다운 음악을 연주하기 위해서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왜 언제부터인가 이 다름으로 인해 갈등하며 싸우게 되었을까요? 그것은 피아노를 연주하는 실력이 없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서로 다른 것으로 아름다운 음악을 연주하지 못하고 불협화음을 만들어내는 것이 아닐까요?
  실력이 없다는 것은 연습을 게을리 했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리고 인내가 없기 때문일 것입니다. 게으르거나 큰 인내심으로 연습하지 않고는 훌륭한 피아니스트가 될 수 없습니다. 

  주님, 나와 다름을 불평하지 않고 오히려 기뻐하는 자가 되게 해 주소서. 인내와 사랑을 가지고 그 다름으로 조화를 만들어가는 멋진 피아니스트가 되게 해 주소서. 갈등이 포용이 되고 조화가 되게 해 주소서. 태평양 같은 넓은 마음을 주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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