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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기 전에 죽으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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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2022-04-22 07:34:16 조회수 327
  '죄의 삯은 사망'이라고 하나님은 로마서 6장에서 분명하게 선언하셨습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공의로우시므로 죄를 그냥 묵과하실 수 없습니다. 죄의 책임을 묻지 않는 판사가 있다면 사람들은 가만히 있지 않을 것입니다. 검사가 피고의 죄를 명확하게 드러내고 입증했다면 더더욱 그러할 것입니다. 

  우리를 고발한 검사는 저 '모래시계 검사'보다, 그리고 이 세상의 내로라하는 어떤 검사보다도 유능합니다. 그는 한 때 하나님의 지근거리에서 창조주를 찬양하는 중요한 일을 맡았던 자입니다. 하늘에서 별처럼 많은 천사들을 호령하던 천사중의 천사였습니다.
  이렇게 인간의 지성을 뛰어넘는 검사가 우리의 죄를 조목조목 들추어내며 고발합니다. 우리가 까마득히 잊고 지내던 죄들과 부지중에 지었던 죄들까지 말입니다. 하나도 빠짐없이 낱낱이. 

  더 놀랍고 기가 막히는 것은 이를 듣고 있는 판사가 이미 이 모두를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는 우리의 앉고 일어섬을 아시고 멀리서도 우리의 생각까지 밝히 아시는 분이십니다. 우리의 모든 길과 우리가 눕는 것을 다 보셨으므로 우리의 모든 행위를 익히 아시는 분이십니다. 그분은 우리 혀의 말을 알지 못하시는 것이 하나도 없으신 분이십니다. 

  이렇게 사탄이 고발하고 하나님께서 판결봉을 들고 계실 때 피고인인 우리는 자신의 부끄러운 행위에 대해 한 마디도 변명할 수 없을 것입니다. 유구무언이라는 말은 이 때를 위해 준비된 단어일 것입니다. 성경에도 유구무언이라는 단어가 등장합니다. 

  어떤 임금이 자기 아들을 위하여 혼인잔치를 베풀었습니다. 임금은 종들을 보내어 사람들을 혼인잔치에 청했습니다. 혼인 잔치에는 초청을 받은 사람들로 가득했습니다. 마침내 임금이 손님들을 보러 들어왔습니다.
  그런데 손님 중에 예복을 입지 않은 한 사람이 있었습니다. 왕이 베푼 잔치에는 반드시 왕이 미리 하사한 예복을 입고 와야 했습니다. 그것이 그 당시의 궁중 예법이었습니다. 그런데 한 사람은 용감하게도 왕의 하사품을 무시하고 자신의 옷을 입고 왕궁의 잔치에 나타난 것입니다. 

  그는 아마 자신이 가지고 있는 옷이 더 훌륭하다고 생각했을지 모릅니다. 임금이 그 사람에게 묻습니다. "친구여, 어찌하여 예복을 입지 않고 여기 들어 왔느냐?" 성경의 그 다음 구절에는 이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저가 유구무언이어늘"(개역성경). 그는 결국 임금의 명령에 따라 사환들에 의해 바깥으로 쫓겨나고 말았습니다. 

  성경은 이 이야기 초두에서 천국은 마치 이와 같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 이야기를 통해서 우리는 천국에 들어가는 비결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천국에는 자기의 의로는 결코 들어갈 수 없으며 반드시 하나님께서 베푸시는 의의 옷을 입어야만 들어갈 수 있다는 것을. 그러나 안타깝게도 많은 사람들이 저 쫓겨난 손님처럼 자기의 공로로 천국에 들어가고자 애쓰고 있습니다. 

  "그 날에 많은 사람이 나더러 이르되, 주여 주여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 하며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 내며 주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하지 아니하였나이까 하리니, 그 때에 내가 그들에게 밝히 말하되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 하리라."(마태복음 7:22,23) 

  많은 사람들이 교회에서의 자신의 직분과 대단해 보이는 사역과 권능을 내세웠지만 마지막 심판 때 주님은 그들의 기대와는 전혀 다른 말씀을 하시겠다는 구절입니다.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 하리라." 

  놀랍고 두려우며 기가 찬 일입니다. 왜 이런 일이 생기는 걸까요? 그것은 사람들이 자기를 너무나 모르기 때문에 발생하는 현상입니다. 우리 사람들은 자신을 그런대로 괜찮은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주변의 다른 사람들과 비교하면서 말입니다. 더더군다나 매스컴에는 우리보다 악해 보이는 사람들이 수도 없이 등장합니다.
  그러다보니 우리는 착한 사람이라는 착각에 쉽게 빠져듭니다. 그러나 두려워해야 할 것은 우리가 죽고나면 회전하는 그림자조차 없으신 온전히 거룩하신 하나님 앞에 서야 한다는 사실입니다. 그 때도 우리가 괜찮은 사람이었고 한 점도 부끄럼 없는 착한 삶을 살았노라고 말 할 수 있을까요? 

  한 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해진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다고 성경은 분명히 말씀하고 있습니다. 어느 누구도 그 심판을 피할 수 없습니다. 이 세상에서 무소불위의 권세를 누린 사람도 죽음 이후 하나님 앞에서는 그 권세가 아무것도 아님을 알 것입니다. 이 세상의 어떤 갑부도 저 세상의 심판자 앞에서는 그 엄청난 부가 아무런 소용도 없음을 처절히 깨닫게 될 것입니다. 

  한편 성경에는 이런 심판에 관한 이야기와 아울러 매우 반가운 소식도 있습니다. 이 무서운 심판을 피할 수 있는 참으로 기쁜소식입니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 말을 듣고 또 나 보내신 이를 믿는 자는 영생을 얻었고 심판에 이르지 아니하나니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느니라."(요한복음 5:24)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를 대신해서 십자가에서 내 죄의 대가를 치르셨음을 믿는 사람은 죽음 이후에 심판을 받지 않는다는 놀라운 말씀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께서 나 대신 하나님의 무서운 심판을 받아주셨기 때문입니다. 이 사실을 믿고 그분을 영접한 사람은 그분과 함께 이미 죽은 것이라고 하나님은 말씀하십니다. 

  '죄의 삯(대가)은 사망(죽음)'이라는 하나님의 대원칙은 결코 변하지 않습니다. 죽음 외에는 어떤 것으로도 죄값을 갚을 수 없습니다. 모든 죄인은 자신의 죄값으로 죽어야만 합니다. 그런데 이 문제는 죽기 전에 해결해야만 합니다. 이 죄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고 죽으면 우리는 즉시 지옥에 떨어지게 됩니다.
  그래서 '나니아 연대기' 등의 소설로 잘 알려져 있는 영국의 기독작가 C.S 루이스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죽기 전에 죽으라. 죽고나면 기회가 없다." 명언입니다. 그런데 죽기 전에 어떻게 죽을 수 있습니까? 유일한 길은 나 대신 죽으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것입니다.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갈라디아서 2:20). 이는 예수 그리스도를 자신의 구원자로 믿고 영접한 사람의 감격에 찬 고백입니다. 여러분의 고백은 무엇입니까? 여러분은 예수님과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히신 적이 있습니까? 죽기 전에 죽으신 적이 있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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