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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의 구원받을 뻔 했던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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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2022-04-08 14:30:44 조회수 341
숨막히는 고통도 뼈를 깎는 아픔도
승리의 순간까지 버티고 버텨라.
우리가 밀려나면 모두가 쓰러져
최후의 5분에 승리는 달렸다. 

적군이 두 손 들고 항복할 때까지
최후의 5분이다 끝까지 싸워라. 

한이 맺힌 원한도 피가 끓는 분노도
사나이 가슴 속에 새기고 새겨라.
우리가 물러나면 모든 것 빼앗겨
최후의 5분에 영광은 달렸다. 

적군이 두 손 들고 항복할 때까지
최후의 5분이다 끝까지 싸워라. 

  위 시는 제가 소대장으로 있을 때 가르치고 자주 불렀던 '최후의 5분'이라는 군가의 가사입니다. 이 노래의 내용을 두고 두어가지 들리는 말은 이런 것입니다. 전쟁이 터지면 전방사단에 있는 군인들은 5분 내에 다 죽는다는 것이 그 하나입니다. 또 하나는 전쟁이 발발했을 때 우리 국군과 미군이 이를 인지해서 공군 전투기가 출격하여 폭격하는데 걸리는 시간이 5분이다. 그러니 5분만 버티면 우리가 이긴다는 말입니다. 

  그러나 제가 장교훈련을 받을 때 교관으로부터 들었던 내용은 위 말들과는 달랐습니다. 포탄과 총알이 빗발치듯 쏟아지는 전쟁터에서 싸우고 싸우다 더 이상 견딜 수 없는 상황을 염두에 두고 이 군가가 작사되었다는 것입니다. 버티고 버티다가 이제 도저히 더 버틸 수 없어서 항복을 했는데 적군이 나중에 이렇게 말하더라는 것입니다. "5분만 더 버텨보다가 항복하려고 했는데 너희들이 먼저 항복해 주어서 고마웠다." 

  5분만 더 버텼으면 승리할 수 있었는데 최후의 5분을 견디지 못해 전투에서 졌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러니 최후의 5분이 승패를 결정하는 중요한 순간임을 기억하라고 했습니다. 5분 후면 승리할 전투를 그 5분을 참지 못하여 패했다면 얼마나 분통이 터지는 일일까요? 

  이런 안타까운 일들의 예를 들자면 여러가지가 있을 것입니다. 아무리 땅을 파도 물이 나지 않아 지쳐서 우물 파기를 중단했는데 다른 사람이 그곳에 불과 1m만을 더 팠을 뿐인데 물이 솟아난 경우. 금을 캐다가 포기했는데 그 1m 뒤에 큰 금광이 있었다는 경우 등입니다. 땅을 파다 파다 포기하고 중단했던 사람이 나중에 이 이야기를 듣는다면 얼마나 분할까요?
  그러나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는 가장 안타까운 일은 죄에서 구원받을 뻔 했는데 그 기회를 놓친 경우일 것입니다. 이는 천국이냐 지옥이냐의 영원한 운명을 결정짓는 일이기에 그러합니다. 

  로마시대에 유대지역을 다스렸던 벨릭스 총독은 뛰어난 전도자 바울과 자주 대화를 나누었던 사람이었습니다.
  "수일 후에 벨릭스가 그 아내 유대 여자 드루실라와 함께 와서 바울을 불러 그리스도 예수 믿는 도를 듣거늘 바울이 의와 절제와 장차 오는 심판을 강론하니 벨릭스가 두려워하여 대답하되 지금은 가라. 내가 틈이 있으면 너를 부르리라."(사도행전 24:24,25)
  어느날 벨릭스는 아내와 함께 바울을 불러 예수 믿는 도에 대해서 들었습니다. 바울로부터 의와 장차 오는 심판에 대해 들었을 때 그는 두려움을 느꼈습니다. 대단한 권세를 가졌던 그가 죄수의 신분이었던 바울의 말을 들으면서 두려움을 느꼈다는 것은 흔히 있을 수 있는 일이 아님을 우리는 알 수 있습니다. 성령님께서 그의 마음에 감동을 주시고 역사하고 계셨던 것입니다.
  아마 그 때가 그에게 있어서 구원받기에 가장 가까운 순간이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는 타오르는 성령의 불길에 스스로 찬물을 끼얹고 말았습니다. "지금은 가라. 내가 틈이 있으면 너를 부르리라." 이 말은 우리를 얼마나 슬프게 하는 말인지 모릅니다. 이 말이 그의 영원한 운명을 바꾸어 놓고 말았습니다. 그는 실로 구원받을 뻔 했던 사람이었습니다. 

  아그립바 왕도 그런 안타까운 사람 중의 한 명이었습니다.
  "왕께서는 이 일을 아시기로 내가 왕께 담대히 말하노니 이 일에 하나라도 아시지 못함이 없는 줄 믿나이다. 이 일은 한쪽 구석에서 행한 것이 아니니이다. 아그립바 왕이여 선지자를 믿으시나이까? 믿으시는 줄 아나이다. 아그립바가 바울에게 이르되 네가 적은 말로 나를 권하여 그리스도인이 되게 하려 하는도다."(사도행전 26:26-28)
  위 성경구절 중 28절을 킹제임스성경은 이렇게 번역했습니다. "네가 나를 설득하여 거의 그리스도인이 되게 하는도다."
  그의 말대로 그도 거의 그리스도인이 될 뻔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당시에 그것을 다행으로 여겼는지 모르겠지만 지금은 지옥의 불못에서 그 순간을 심히 안타까워하며 통곡하고 있을 것임에 틀림 없습니다. 그는 탁월한 전도자 앞에서 죄 사함 받을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놓쳐버린 것입니다. 

  그러나 그 어느 누구보다 더 안타까운 사람이 있었다면 그는 가룟 유다일 것입니다. 예수님의 열 두 제자 중 한 명이었던 그는 하나님의 아들과 3년 반을 함께 생활하는 특권을 누렸던 사람입니다. 그는 예수님과 밤낮으로 함께 있었고 함께 음식을 먹었습니다. 예수님으로부터 권세있는 말씀을 가까이에서, 그것도 자주 들었습니다. 예수님의 완전하신 삶과 인격을 보았습니다. 예수님께서 나면서부터 맹인된 사람의 눈을 뜨게 하시는 장면도 보았습니다. 심지어 죽은 사람을 살리시는 모습도 보았습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그는 구원받을 수 있는 수많은 기회를 놓치고 말았습니다. 그의 마음은 돈에 가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재물에 대한 욕심이 그의 마음의 눈을 멀게 만들었습니다. 잠시 있다가 없어질 재물에 마음을 빼앗겨 그는 영원하신 창조주를 알아보지 못하고 배척하는 일생일대의 실수를 하고 말았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아들을 은 30에 팔았습니다. 말도 안 되는 어리석은 행동이었습니다. 그는 지금 지옥에서 이를 기억하며 얼마나 가슴을 치며 원통해 하고 있을까요? 

  우리 주변에는 이런 안타까운 사람들이 없을까요? 고린도에서 바울과 함께 아시아로 건너와 에베소에 머물렀던 아굴라와 브리스길라 부부는 이런 사람을 발견했습니다. 그들의 영이 깨어 있었고 그들의 눈이 영원한 가치에 고정되어 있었기 때문에 그 부부는 이런 안타까운 사람을 금방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그 모범적인 부부는 그를 자기 집으로 초대하여 그가 기회를 붙잡을 수 있게 도왔습니다. 이렇게 하여 그들은 천하보다 귀한 한 영혼을 지옥에서 건져냈습니다.
  심히 가까이 왔으나 구원을 놓쳐버릴 뻔 했던 그 사람의 이름은 아볼로입니다. 그는 당시 세계에서 가장 큰 도서관이 있었던 알렉산드리아에서 많은 학문을 했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리고 구약성경에 능통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일찍이 주의 도를 배워 열심으로 예수에 관한 것을 자세히 가르치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성령세례를 받은 적은 없고 요한의 세례만 알 따름이었습니다. 

  그는 자칭 의인이라고 생각했던 바리새인들과는 달랐습니다. 그가 요한으로부터 회개의 세례를 받은 것을 볼 때 우리는 그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는 자신이 율법을 어긴 죄인이라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율법의 행위로 의롭게 될 수 없다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거기서 더 나아가 그는 예수에 관한 것을 가르치기까지 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예수님의 죽으심과 부활과 승천, 그리고 이후 성령이 오신 것은 알지 못했습니다. 그는 예수에 관해 가르쳤지 구주로서의 예수님을 경험한 것은 전해주지 못했던 것입니다. 구원에 심히 가까이까지 왔었으나 구원의 경험이 그에겐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가 회당에서 담대히 말하기 시작하거늘 브리스길라와 아굴라가 듣고 데려다가 하나님의 도를 더 정확하게 풀어 이르더라."(사도행전 18:26) 

  아굴라 부부가 이런 상황에 있던 아볼로에게 관심과 사랑을 나타내지 않았다면 그는 어떻게 되었을까요? 어쩌면 구원받을 뻔 했던 안타까운 사람의 명단에 들었을지도 모릅니다. 분명 우리들 주변에도 이런 사람들이 있을 것이라는 두려운 마음을 저는 가집니다. 우리의 이웃과 가족, 친척, 친구들. 우리 교회에 발을 들여놓았던 사람들.
  안타까운 그들에게 우리가 브리스길라와 아굴라가 되어야겠습니다. 그들 부부가 아볼로에게 생명의 은인이 되었듯이 우리도 그렇게 생명을 전하는 사람이 되어야겠습니다. 1m 앞에 생수의 근원을 두고 우물파기를 포기하는 사람이 되지 않아야겠습니다. 5분 후에 승리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을지 모릅니다. 5분 후면 적이 항복할지 모릅니다. 최후의 5분에 영광이 달려 있습니다.

  '적군이 두 손 들고 항복할 때까지 최후의 5분이다. 끝까지 싸워라.' 그리스도 예수의 군사인 우리들이 기억하고 불러야 할 군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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