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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와 0.4%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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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2022-01-09 22:35:53 조회수 353
새벽 4시 반에 눈을 떴다. 신나는 꿈을 꾸다가. 

사람들이 많은 어떤 장소였다. 정글짐 같은 곳에서 놀고 있었는 것 같기도 하고 공사장 같은데서 일을 하고 있었던 것 같기도 하다.
그러던 중에 천국과 지옥 이야기를 슬쩍 했는데 고등학생으로 보이는 한 남학생이 관심을 가지고 질문을 해왔다. 

"천국에 갈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요?" 

나는 그에게 되물었다. 

"너희 학교에 학생이 총 몇 명이니?"
"1,000명 정도 됩니다." 

"네 생각에는 그 중에 천국에 몇 명 정도 갈 것 같니?"
"한 세 명 정도 갈 것 같습니다." 

"그 세 명에 너도 포함되니?"
"전 아닌 것 같아요." 

"그 세 명은 얼마나 착하게 살았을 것 같니? 지금까지 살면서 죄를 하나도 짓지 않았을까?"
"그렇지는 않겠지만 정말 착하게 사는 것 같아요." 

나는 땅바닥에 세로로 선을 하나 그었다. 그리고 그 선의 꼭대기 근처에 표시를 하나 했다. 

"여기 정도면 0.3%에 해당하겠지?"
"네." 

그럼 0.3% 바로 아래인 0.4% 지점에 있는 사람은 지옥에 갈까?" 

10여명의 사람들이 둘러서서 땅바닥의 그림을 보며 내 말을 듣고 있었다. 그 학생의 아버지도 안 듣는듯 듣고 있다가 흥미로운 표정을 지으며 가까이 다가왔다. 

'0.3% 지점에 있는 사람과 0.4% 위치에 있는 사람은 선함과 악함에 있어서 어느정도 차이가 날 것 같니?'
라는 질문을 내가 할 참이었는데 잠에서 깨어났다. 방광의 압박 때문이었다. 화장실에 다녀와 다시 자리에 누웠는데도 즐거웠던 꿈의 여운이 내 몸을 감싸고 있는 새벽이다. 

미완성의 꿈이었지만 그 꿈속의 분위기로 봐서는 좋은 결과에 이르렀을 것 같은 생각이 든다. 

임인년 첫날 새벽에 기분좋은 꿈을 꾸게 하신 주님께 감사를 드린다.
주님, 기회를 사는 한 해가 되게 해 주소서! 새해 첫날의 첫 감사제목과 기도이다. 

"그러므로 이르시기를 잠자는 자여 깨어서 죽은 자들 가운데서 일어나라. 그리스도께서 너에게 비추이시리라 하셨느니라.
그런즉 너희가 어떻게 행할지를 자세히 주의하여 지혜 없는 자 같이 하지 말고 오직 지혜 있는 자 같이 하여
세월을 아끼라. 때가 악하니라."(엡 5:14-16) 

'세월을 아끼라'는 원어로 '기회를 사라'는 뜻이다.


※ 사족

'0.3% 지점에 있는 사람과 0.4% 위치에 있는 사람은 선함과 악함에 있어서 얼마나 차이가 날 것 같으냐?'는 마지막 마음 속에 있던 질문의 의미는 이러하다.

1,000명 가운데서 3등 한 사람과 4등을 한 사람이 그리 큰 차이가 나느냐는 뜻이다. 다른 말로 하면 1,000분의 3과 1,000분의 4는 차이가 많이 나느냐는 말이다. 0.003과 0.004의 차이! 너무나 미세한 차이이다. 요즘 신세대들의 언어로는 1도 차이나지 않는 수준이다.

그런데 3등은 천국에 가고 4등은 지옥에 간다고 하면 어느 누가 이 판결을 받아들일 수 있겠느냐는 의미가 담겨 있는 질문이다. 4등은 얼마나 억울할까? 3등은 선한 사람이고 4등은 악한 사람이라는 말이 과연 성립할 수 있을까?

부당하다고 이의를 제기하는 4등을 구제해주면 어떻게 될까? 그럼 5등은 얼마나 억울하겠는가? 그러니까 이 질문이 의도하는 바는 대동소이한 죄인들을 어느 선에서 커트라인을 정해 천국과 지옥으로 나눌 수 없다는 것이다.
우리 모두는 셀 수 없을만큼 죄를 지은 사람들이기 때문에 더욱 그렇다. 죄의 수가 많으면 많을수록 그 차이는 더욱 미세해지고 만다. 사실 우리들의 차이는 1,000분의 3과 1,000분의 4 차이가 아니다. 숫자 '1' 뒤에 셀 수 없을만큼의 '0'이 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슬프게도 거룩하신 하나님께서 보실 때 우리 모두는 이렇게 심각하고 더러운 죄인임에 틀림이 없다. 지은 죄가 적어서 천국에 갈 수 있는 사람은 사실 아무도 없다!

그렇다면 누가 천국에 갈 수 있는가? 그 답은 죄가 적은 사람이 아니고 죄가 하나도 없는 사람이다. 그럼 이렇게 질문할 사람이 있을 것이다. '죄를 하나도 짓지 않은 사람만 천국에 갈 수 있다면 죄를 딱 한 개 지은 사람은 얼마나 억울합니까?'
그러나 그건 억울한게 아니다. 그것은 1,000분의 3과 1,000분의 4 차이가 아니다. 그것은 '있다'와 '없다'의 차이이며 '유'와 '무'의 차이이다. '죄인'과 '의인'의 차이이다. 이것은 결코 무시할 수 없는 차이이다.

논리적으로 따지자면 이렇다는 말이고 실제로는 죄를 하나 밖에 짓지 아니한 사람은 없다.

그래서 이 질문이 의도하는 바는 이렇다. 천국행과 지옥행은 죄의 많고 적음으로 결정되지 않는다. 그것은 인간의 선행으로 결정되지 않는다는 의미다. 천국행과 지옥행을 결정하는 것은 죄 사함을 받았느냐의 여부에 달린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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