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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마누엘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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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2021-08-07 06:30:53 조회수 420
  "땅 위에 내려가라. 인간의 모습이 되는 거다. 내가 자세히 관찰할 수 있게 벌거숭이가 되어 산 위에 서야 한다. 지상에 도착하면 곧 젊은 여인을 찾아가라. 목소리를 낮추어 '나는 살고 싶다'고 말해야 한다. 그러면 네 주위에 처음에는 얕은 어두움이, 나중에는 짙은 어두움이 에워싸게 될 것이다. 그것이 유년시대라 불리우는 것이다. 그 뒤로 너는 떳떳한 사나이가 될 것이다. 그때 너는 산 위에 올라가야 한다. 내가 지금 명한 모든 일을 끝내기까지는 한 순간도 걸리지 않는다. 그럼 잘 갔다 오너라. 

  오른손은 왼손과 이별을 아쉬워하며 여러 애칭으로 왼손을 불렀습니다. 실상 오른손이 그때 갑자기 왼손을 향해 머리를 숙이며 '그대 성령이여' 하고 불렀다는 이야기도 나돌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신체에서 오른손을 잘라냈습니다. 수석천사 하나가 그 오른손을 받아 들어 부드러운 옷소매 안에 감싸고 운반해 갔습니다. 한편 하나님은 핏방울이 별들 위에 떨어져 그것이 슬픈 방울이 되어 대지 위에 떨어질까봐 왼손으로 상처를 힘껏 막고 있었습니다. 

  지상에서 생겨나는 일을 하나 빠짐없이 관찰하는 사이에 하나님은 쇠옷을 입은 사람들이 다른 모든 산들을 제쳐두고 어느 한 산 주위에서 분주하게 오락가락하는 것을 보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이제 곧 저 산에 오른손이 나타나리라고 기대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거기 나타난 것은 예상외로 붉은 외투를 입은 한 사람이었습니다. 무엇인지 꿈틀거리는 검은 물체를 끌어올리고 있었습니다.
  그 순간 오른쪽 상처를 누르고 있던 하나님의 왼손이 부르르 떨리기 시작했습니다. 하나님이 말릴 사이도 없이 갑자기 자기 위치를 떠나 별들 사이를 떠돌아 다니며 미친듯이 외쳤습니다. "오, 불쌍한 오른손. 나는 너를 도울 수가 없구나!" 이렇게 외치면서도 왼손은 자기가 떨어지지 않게 붙여진 하나님의 왼쪽 팔뚝을 힘껏 잡아당기며 어떻게 해서든지 떨어져 가려고 몸부림을 쳤습니다.
  그 때문에 땅 위는 하나님의 피로 빨갛게 물들었습니다. 어디서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분별할 수조차 없게 되었습니다. 그때는 하나님 자신도 하마터면 숨지고 말 뻔 했습니다. 

  하나님은 마지막 힘을 다하여 오른손을 불러들였습니다. 오른손은 창백한 모습으로 벌벌 떨며 돌아와 제 자리에 대령하였습니다. 마치 병든 짐승같은 모습이었습니다. 한편 왼손도 하나님의 오른손이 땅 위에 내려가 빨간 외투를 입고 산에 올라가던 때부터 그것이 오른손이라는 것을 분명히 알고 있었습니다. 때문에 그 뒤로 산 위에서 어떠한 일이 일어났는지에 대해서는 오른손으로부터 새삼스러이 들을 필요가 없었습니다. 아무튼 무척 두려운 일이 생겼을 것임에는 틀림이 없습니다. 하나님의 오른손이 아직도 상처를 앓고 있는 사실만 보아도 짐작할 수 있습니다." 

  오스트리아의 시인이자 작가이며 20세기 최고의 독일어권 시인 중 한 명이라 일컬어지는 릴케의 글 중 일부입니다.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의 이름은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하셨으니 이를 번역한즉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 함이라."
  신약성경의 첫 페이지에 나오는 이 말씀은 구약성경의 첫 구절("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만큼이나 신비롭습니다. 남자를 알지 못하는 처녀가 잉태할 것이라는 말부터 예사롭지 않습니다. 그런데 그 이름은 더 놀랍습니다.
  임마누엘! 처녀가 낳은 그 아들은 우리 사람과 함께 이 땅에서 사시게 될 하나님이라는 기이한 말씀이기 때문입니다. 창조주께서 자신이 만드신 피조물의 세계에 들어오셔서 피조물의 모습으로 그들과 삶을 같이 하겠다는 뜻입니다. 이는 마치 화가가 그림을 그린 다음에 그 그림 속에 자신이 들어가 자기가 그린 사람들과 같이 산다는 것과 같은 이야기입니다. 

  신이 인간이 되셨습니다. 전능하시고 온전히 거룩하시며 가장 높은 위엄과 권세를 가지신 분께서 그 모든 것을 내려놓으시고 가장 연약한 아기의 모습으로 이 땅에 오셨습니다. 그리고 인간 부모의 보호와 돌보심 아래에 자신을 두셨습니다. 그 부모를 순종하며 받들었습니다.
  인간 아버지로부터 목수 일을 배우시고 30세가 되기까지 그 직업으로 사람들을 섬기셨습니다. 자기가 창조한 나무들을 가지고 자기가 창조한 사람들의 필요를 채워주셨습니다. 그분은 이 땅에서 피조물과 함께 33년을 사시면서 많은 사람들을 질병과 죽음의 고통에서 해방시켜 주셨습니다. 

  그러나 그분은 사람들로부터 환영을 받지 못했습니다. 그분은 연고없이 미움을 받고 역사상 가장 끔찍한 방법으로 사형을 당했습니다. 모든 귄세와 능력을 가지신 분께서 왜 그렇게 무능하고 비참하게 죽을 수 밖에 없었는지 사람들은 그 이유를 잘 모릅니다. 전지하신 분으로서 이렇게 될 줄 다 아시면서도 왜 이 땅에 오셨는지 사람들은 알려고도 하지 않습니다. 이 이야기를 들으신 저의 장모께서는 이렇게 질문하셨습니다. "그때 아버지 하나님은 뭘 하셨느냐? 왜 안 도와주셨나?" 

  이 질문에 답을 하면서 저는 속으로 울었습니다. 모든 것을 할 수 있는데도 아무 것도 못 하는 것처럼 그냥 있어야하는 아픔을 아십니까? 능력이 있는데 그 능력을 사용해서는 안 되는 그 마음을 아십니까? 하나님은 무한한 능력과 권세를 가지고 계신 분이십니다. 온 우주에서 하나님을 당할 수 있는 존재는 없습니다. 하나님을 제지할 수 있는 존재도 없습니다. 천사 한 명만 보내도 모든 상황을 종결지을 수 있습니다.
  아니 아버지 하나님이나 천사가 나서서 도울 필요도 없습니다. 예수 그리스도 그분의 말씀 한 마디만으로도 그곳에 있던 모든 군인들의 호흡을 거두어 가실 수 있었습니다. 그분은 잎만 무성하고 열매는 없는 무화과나무를 저주하셔서 뿌리째 말라버리게 하셨던 권세를 가지신 분이십니다. 

  그러나 그분은 그 권세와 능력을 사용할 수 없었습니다. 아니 사용하지 않으셨습니다. 아무런 능력도 없으신 것처럼 그렇게 무기력하게 침 뱉음을 당하고 뺨을 맞으셨고 산 채로 양 손과 양 발에 못질을 당하셨습니다. 창조주가 피조물에게...
  왜 그래야만 했을까요? 그것이 그분께서 임마누엘로 사람이 되어 이 땅에 오신 이유와 목적이기 때문입니다. 그분은 죽기 위해 오셨고 죽기 위해 사람의 육체를 입으셨습니다. 그분이 우리 대신 죽지 않고는 우리의 죄를 사할 수 있는 다른 방법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분이 찔리신 것은 우리의 허물을 인함이었습니다. 그분이 상하신 것은 우리의 죄악 때문이었습니다. 그분이 채찍에 맞으심으로 우리가 나음을 받았습니다. 하나님은 공의로우신 분이심으로 죄를 그냥 묵과하실 수 없으셨습니다.
  죄에는 반드시 대가가 필요했습니다. 그 대가는 너무나 큰 것이었으므로 우리 중 어느 누구도 지불할 능력이 없었습니다. 우리가 지불하자면 지옥에 가는 길밖에 없었습니다. 죄의 대가는 죽음이므로 생명을 내놓지 않고는 그 어떤 것으로도 갚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 대신, 우리를 만드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그 귀한 생명을 내어놓으신 것입니다. 

  아아!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여 각기 제 길로 갔거늘 여호와께서는 우리 모두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습니다. 그래서 그분은 곤욕을 당하여 괴로울 때에도 입을 열지 아니하셨습니다. 마치 도수장으로 끌려 가는 어린 양과 털 깎는 자 앞에서 잠잠한 양 같이!
  우리 때문에, 우리를 사랑하셔서, 그 사랑 때문에! 십자가를 피하는 것은 사랑을 포기하는 것이었습니다. 그 순간에 아버지 하나님이나 천사가 그분을 돕는 것은 인간 모두를 포기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래서 하나님은 도울 수가 없었습니다. 천사들의 손발을 묶어둘 수 밖에 없었습니다.
  이것이 십자가에 스며있는 하나님의 아픔이었습니다. 이 모든 것을 아시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인간의 몸을 입고 오셨습니다. 죽기위해서. 그 사랑을 실천하기 위해서. 임마누엘, 임마누엘이 되셨습니다. 임마누엘에는 이런 하나님의 사랑과 아픔이 숨어 있습니다. 하나님의 그 숭고한 사랑에 머리를 숙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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