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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알지 못하는 것과 아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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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2021-06-02 06:53:47 조회수 269
  "우리는 마땅히 기도할 바를 알지 못하나"(로마서 8:26). 우리는 자신이 현재 처한 상황들의 이유와 목적을 알고 있지 못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어떻게 기도해야할지조차 모를 때도 있습니다.

  "우리가 알거니와"(로마서 8:28). 그러나 우리가 아는 것이 있습니다. 우리는 우리 하나님을 알고 있습니다. 그분은 모든 것을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는 분이라는 사실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상황이 어떠할지라도 낙심하지 않고 오히려 감사하며 찬양할 수 있습니다. 이것은 그리스도인에게 주어진 큰 특권이자 자랑입니다.

  사람들은 대개 모든 상황의 주관자이신 하나님을 알기보다는 상황의 시종을 알고싶어 합니다. 그래야 그 상황에 어떻게 대처해야할지를 판단할 수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이 생각 속에는 자기가 상황의 주관자라는 사상이 자리잡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배제되어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가 어떤 상황의  자초지종보다 하나님을 알기를 원하십니다. 그리고 그 하나님을 신뢰하고 의지하는 우리의 믿음을 보기를 원하십니다.
  사실 우리가 아는 것은 아주 제한적입니다. 우리는 아는 것보다 모르는 것이 훨씬 많습니다. 보는 것보다 보지 못하는 것이 더 많으며 듣는 것보다 듣지 못하는 것이 더 많습니다. 이는 하나님께서 우리의 눈과 귀를 그렇게 만드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사람을 왜 그렇게 만드셨느냐고요? 다 보고싶고 다 듣고싶다고요? 그러면 우리는 살 수가 없을 것입니다. 미쳐버릴지도 모릅니다.
  개미의 발자국 소리가 들린다고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심장이 뛰는 소리가 들리고 피가 온 몸을 도는 소리가 들린다고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행복할까요? 아마 우리가 숙면을 취하는 일은 기대하기가 어려울 것입니다.

  사람의 얼굴과 손에 기어다니는 세균들이 보인다면 또 어떨까요? 우리는 서로 악수를 하기도, 서로 쳐다보며 대화하기도 어려울 것입니다. 연인끼리 입을 맞추는 것도 상상하기 어려울 것입니다.
  아는 것도 그렇습니다. 갓 태어난 사랑스런 자녀의 미래를 우리가 다 안다면 어쩌면 우린 그 아이를 사랑하고픈 마음이 순식간에 사라질지도 모릅니다. 또한 사람의 속마음을 우리가 다 보고 알 수 있다면 함께 살 수 있는 부부가 얼마나 되겠습니까?

  그런데 놀라운 것은 우리의 모든 것을 아시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신다는 사실입니다. 아아, 이 얼마나 놀랍고 감사한 일인지요! 우리의 어떠함을 아시면서도 그분은 우리를 만드셨습니다. 우리가 배반할 줄을 아셨으면서도 그분은 우리를 자유의지를 가진 존재로 창조하셨습니다.
  유다가 자신을 배반하고 노예의 몸값인 은 30에 팔 것을 아시면서도 예수 그리스도는 그를 열 두 제자 중의 하나로 선택하셨습니다. 그리고 그를 끝까지 사랑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이렇게 기이합니다.

  아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는데 그것은 믿는 것입니다. 우리는 다 알지 못하지만 믿고 이용하는 수많은 것들을 가지고 있습니다. 핸드폰도 그러하고 우리가 먹는 약들도 그러합니다.
  사실 믿음이 없이는 아무것도 하지 못할지도 모릅니다. 믿음이 없다면 어떻게 가위를 든 미용사에게 우리의 머리를 맡길 수 있으며, 어떻게 비행기에 우리의 몸을 맡길 수가 있겠습니까? 우리는 이렇게 믿음의 바탕 위에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믿음 중에서 가장 근본이 되는 믿음은 우주만물을 운행하시는 하나님의 성실하심과 선하심을 믿는 믿음입니다. 우리는 아침에 변함없이 해가 떠오를 것을 믿고 편히 잠자리에 듭니다. 지구의 자전과 공전이 멈추거나 변덕을 부리지 않을 것을 믿고 있습니다. 별들이 늘 정확한 궤도를 돌 것을 믿습니다. 그래서 과학자들이 우주탐사선을 쏘아올릴 수 있습니다.
  콩을 심었을 때 콩이 열리리라는 것을, 소가 이상한 괴물을 낳지 않고 송아지를 낳으리라는 것을 믿습니다. 그렇지 않다면 우리가 어떻게 결혼을 하고 자녀를 낳을 수 있겠습니까? 이 모든 것은 전능하시고 성실하신 하나님이 계시기 때문에 가능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어떠하심을 안다는 것은 하나님을 믿는다는 말입니다. 우리가 어떻게 하나님의 모든 것을 알 수 있겠습니까? 그렇지만 우리는 하나님을 믿을 수 있을만큼은 충분히 알고 있습니다. 사람을 향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는 우리의 배우자를 다 알지 못해도 믿을만큼은 아는 것입니다.

  모든 상황의 주관자이신 하나님을 믿지 못하면 우리는 야곱처럼 생각하게 됩니다. "이는 다 나를 해롭게 함이로다"(창세기 42:36).
  그러나 야곱의 아들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를 이리로 보낸 이는 당신들이 아니요 하나님이시라"(창세기 45:8). 야곱의 아들 요셉은 상황속에 숨어있는 하나님의 손을 보는 눈과 믿음을 가졌기 때문입니다.

  야곱처럼 생각해서 원망과 불평 가운데 살 것인지, 요셉처럼 생각해서 감사함과 기쁨 가운데 살 것인지는 우리의 선택에 달려 있습니다. 그리고 그 선택은 우리가 하나님을 어떻게 알고 믿고 있는가에 의해 결정됩니다.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혜의 근본이요 거룩하신 자를 아는 것이 명철이니라."(잠언 9:10)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로마서 8: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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