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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일꾼의 부끄러운 간증
작성일 | 2021-12-21 20:17:16 | 조회수 | 40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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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저는 저의 부끄러운 간증을 나누고자 합니다. 이는 참으로 부끄럽기 짝이 없는 이야기입니다. 제가 이 간증을 나누는 것은 이 간증을 듣는 모든 분들이 저와 같은 부끄러운 삶을 살지 않기를 간절히 바라기 때문입니다.
저는 하나님의 말씀을 맡은 사람으로 부름을 받았습니다. 이것은 얼마나 영광스러운 일입니까! 많은 사람들은 저를 ‘하나님의 종’이라 부르며 보통 사람들과는 다르게 하나님의 마음을 가진 사람으로 생각하며 우러러 보았습니다. 그러나 부끄럽지만 저의 실상을 밝히자면 저는 그렇게 하나님의 마음을 가진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아니 저는 하나님의 마음 그 근처에도 가지 못한 아주 세속적이고 이기적인 사람이었습니다. 저도 제 자신에게 속고 있었지만 어느 날 저는 이 사실을 충격적으로 깨닫게 되었습니다. 참으로 부끄럽지만 이제부터 저의 이런 부끄러운 모습을 드러내려고 합니다. 1. 저의 이름은 ‘요나’입니다. 저는 여로보암 2세가 통치하던 때에 북이스라엘의 선지자였습니다. 어느 날 하나님께서는 저에게 분명하게 말씀하셨습니다. “너는 일어나 저 큰 성읍 니느웨로 가서 그것을 향하여 외치라. 그 악독이 내 앞에 상달되었음이니라.” 저는 이 하나님의 말씀이 싫었고 하나님의 마음이 도통 이해가 되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가라고 하신 니느웨는 이방 나라 앗수르의 수도였기 때문입니다. 당시 저는 앗수르가 어떤 나라인지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습니다. 앗수르는 우리 이스라엘의 이웃 나라였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앗수르는 우리보다 강대한 나라였습니다. 여러분의 나라 한국도 이웃 나라로부터 많은 고통을 당했듯이 우리 이스라엘도 앗수르로부터 많은 고통을 당했습니다. 제가 이스라엘 땅에서 살던 그 때로부터 약 80년 전 아합이 왕으로 다스리던 때에 앗수르는 우리나라에 쳐들어와서 우리 민족을 노략했습니다. 그런 일은 그때 한 번뿐이 아니었습니다. 그로부터 약 30년이 흘러 예후가 다스리던 때에도 그러했습니다. 그때부터 우리는 앗수르에 조공을 바쳐야 했습니다. 그러니 제가 어찌 앗수르를 미워하지 않았겠습니까? 그뿐만이 아닙니다. 그 앗수르라는 나라의 시작을 저는 알고 있었습니다. 그 나라는 하나님을 공개적으로 대적하는데 앞장서 바벨탑을 쌓았던 니므롯이 건설한 나라입니다. 우리의 위대한 조상이었던 모세는 창세기 10장에 이를 기록해 놓았습니다. 그 나라는 주변의 많은 나라들을 괴롭혔고 전쟁에서 포로로 잡아온 사람들을 매우 혹독하게 대했다는 것을 저는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이 앗수르라는 나라는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서 망해야 마땅하다고 늘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2. 이해할 수 없는 하나님 그런데 어느 날 하나님께서는 저에게 그 나라의 수도인 니느웨에 가서 그들로 하여금 회개하라고 외치라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그런 하나님을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그리고 결코 그렇게 하고 싶지가 않았습니다. 그래서 저는 하나님을 피해 멀리 달아나기로 작정을 했습니다. 아주 멀리 땅 끝으로 말입니다. 제가 생각한 곳은 당시에 땅 끝이라고 불리던 다시스였습니다. 다시스는 지금의 스페인의 남쪽 항구로 알려져 있습니다. 저는 먼 여행에 필요한 배 삯과 그곳에서의 생활에 필요한 경비 등을 위해 저의 재산을 몽땅 챙겨서 욥바라는 항구로 급히 내려갔습니다. 항구에 도착하니 마침 다시스로 가는 배가 떠날 채비를 하고 있었습니다. 저는 너무나 기뻤습니다. 이렇게 일이 순조롭게 풀려가니 저는 하나님께서 우리나라를 어여삐 여기사 뜻을 돌이키셨고, 또 제 생각을 지지하시는 것 같다는 생각도 했습니다. 저는 비싼 배 삯을 지불하고 그 배에 올랐습니다. 그리고 많은 생각으로 혼란스러웠지만 일부러 복잡한 생각을 하지 않으려 배 밑층으로 내려가서 잠을 청했습니다. 깊은 잠에 빠져 한참 시간이 흘렀을 때 선장이 큰 소리로 나를 막 흔들어 깨웠습니다. 그리고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당신은 어찌 이런 난리가 난 상황에서 그렇게 천지도 모르게 잠을 잘 수 있단 말이오? 어서 일어나서 당신이 믿는 신께 기도 좀 하시오.” 정신을 차리고 보니 엄청난 폭풍이 불고 있었고 배는 거의 깨질 위기에 봉착해 있었습니다. 사공들은 각자 자신들의 신을 부르며 살려달라고 간절히 기도하고 있었습니다. 저는 하나님의 선지자였으므로 사실 누구보다도 먼저 기도해야 할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이방인 선장으로부터 당신은 왜 이런 상황에서 기도하지도 않고 잠만 자고 있느냐는 말을 들었을 때 저는 상당한 부끄러움을 느끼기 시작했습니다. 그들이 기도해도 바람이 수그러들 기미가 보이지 않자 그들은 이 재앙이 누구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임했는지를 알기 위해 제비를 뽑자고 했습니다. 저는 그때 이렇게 생각했습니다. ‘너희들 중 누군가가 아주 악한 죄를 지었음이 틀림없어.’ 먼 옛날 우리의 조상 여호수아가 살던 시대 아이성 전투에서 패했을 때도 그 원인을 밝히기 위해 제비를 뽑았던 기억이 났습니다. 그때 하나님은 정확하게 그 제비가 아간에게 뽑히게 하셨습니다. 오늘도 배에 탄 무리들 중에 하나님께서 노여워하시는 한 사람이 뽑힐 것을 저는 기대하는 마음으로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그 한 사람은 당연히 하나님을 모르는 그들 중 한 명일 것이라고 저는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이게 웬 일입니까? 제가 바로 그 제비에 뽑히고 말았습니다. 믿을 수가 없었습니다. ‘하나님, 어떻게 이럴 수가 있습니까? 하나님께서 실수를 하신 것이 아닙니까?’ 이런 생각들을 하고 있는데 무리들은 저를 둘러싸고는 날카로운 질문들을 해댔습니다. “이 재앙이 누구 때문에 우리에게 임하였는가 말해 보시오.” 저는 그 질문에 답을 할 수가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그때까지만 해도 저는 제가 원인이라고는 전혀 생각지 못하고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제가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자 그들은 다른 질문을 던졌습니다. “네 생업이 무엇이냐?” 이 질문에 저는 자랑스럽게 어깨를 들썩이며 대답했습니다. “나는 바다와 육지를 지으신 하늘의 하나님 여호와를 경외하는 그분의 선지자입니다.” 이 대답을 하면서 나는 그들이 내가 상당히 도덕적이며 고상한 인품을 가진 사람임을 알아주기를 기대했습니다. 그러니 이 제비뽑기의 결과는 잘못된 것임을 그들이 인정해 주기를 바랐습니다. 3. 첫 번째 깨어짐 그런데 그 다음 질문에 저는 그만 제 스스로 무너지고 말았습니다. 그 다음 질문은 너무나 충격적이어서 저는 마치 뒤통수를 망치로 얻어맞은 것처럼 느껴졌습니다. 그 질문은 이러했습니다. “네가 어디서 왔느냐?” 이 질문은 제가 어디서 왔으며 다시스로 가는 이 배를 왜 탔느냐는 말이었습니다. 이때 비로소 잠자던 저의 양심은 깨어났습니다. 제가 하나님의 말씀을 정면으로 거스르고 정반대 방향으로 가고 있었던 것이 생각이 났습니다. 갑자기 두려움이 엄습해 왔습니다. 그리고 제가 이 사람들 앞에서 자랑스럽게 하나님의 선지자라고 말했던 것이 그렇게 부끄러울 수가 없었습니다. 저는 이 사실을 그대로 실토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리고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여러분! 저는 이 재앙의 원인이 여러분 중 한 분에게 있으리라 믿어 의심치 않았습니다. 그러나 이제야 알았습니다. 이 재앙이 우리에게 닥친 원인은 여러분이 아닙니다. 제가 원인입니다. 저를 제비에 뽑히게 하신 하나님은 옳습니다. 저를 들어 바다에 던지십시오.” 저는 오늘 바로 이 말씀을 여러분에게 꼭 드리고 싶어서 이곳에 왔습니다. 우리는 너무나 자주 원인이 다른 사람에게 있다고 생각하며 살아갑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렇게 외치기를 즐겨 합니다. ‘우리가 탄 이 교회라는 배가 깨어질 지경에 이른 것은 저 형제 때문이다.’ ‘우리의 결혼이 이렇게 깨어질 위기에 처한 것은 나의 배우자인 당신 때문이다.’ ‘우리의 사업이 이렇게 깨어질 지경에 처한 것은 바로 저 사람 때문이다.’ ‘그러니 저 사람을 들어 바다에 던져야 합니다!’ 제가 바로 그런 생각에 파묻혀 살았던 사람이었습니다. 저는 너무나 둔감하고 교만해서 눈이 멀어 있었습니다. 그래서 다른 사람의 눈에 있는 티는 보면서 제 눈에 있는 들보는 보지 못하던 사람이었습니다. 이렇게 깊은 잠에 빠져 있던 저를 깨우기 위해서 하나님은 엄청난 폭풍을 예비하셨습니다.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요! 우리 모두는 나 때문에 내가 탄 배가 깨어질 위기에 처했다는 사실을 깨닫는데 있어 너무나 둔감합니다. 저처럼 말입니다. 4. 이방인 사공들의 마음 저는 하나님의 은혜로 이렇게 깊은 잠에서 깨어났습니다. 그리고 저는 제 영혼을 하나님의 손에 의탁할 결심을 했습니다. 제 한 사람 때문에 배가 깨어지게 할 수는 없었기 때문입니다. 저는 바다에 던져질 각오를 단단히 했습니다. 그런데 배에 있던 무리들은 재앙의 원인을 찾아내었지만 그 원인인 저를 바다에 던지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힘써 노를 저어 배를 육지로 돌리고자 갖은 노력을 다하고 있었습니다. 이방인이었던 그들은 놀랍게도 저를 살리기 위해 그렇게 애를 쓰고 있었던 것입니다. 이 광경을 보면서 저는 또 한 번 부끄러움을 느껴야 했습니다. 저는 니느웨의 이방인들을 아끼는 마음이 없었고 그들이 멸망해야 마땅하다고 생각했었던 사람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들을 구원하는 일이 싫어 도망을 가고 있는데 이 이방인들은 저 한 사람을 살리려고 이렇게 엄청난 고난을 마다하고 있는 사실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과연 저는 하나님의 선지자가 맞는지요? 그들의 이런 애처로운 노력에도 불구하고 바다는 점점 더 흉용해져 갔습니다. 그들은 어쩔 수 없이 이렇게 기도하고는 저를 바다에 던졌습니다. “여호와여! 구하고 구하오니 이 사람의 생명 때문에 우리를 멸망시키지 마옵소서. 무죄한 피를 우리에게 돌리지 마옵소서.” 5. 산의 뿌리까지 내려가다 이렇게 해서 저는 망망대해에 던져졌습니다. 얼마동안 저는 정신을 잃었던 것 같습니다. 제가 다시 정신을 차렸을 때 저는 한 줄기의 빛도 없는 칠흑 같은 어둠 속에 있었습니다. 그곳에는 끈적끈적한 액체들이 있었고 썩은 냄새가 진동을 했습니다. 그리고 촉감이 좋지 않은 무언가가 사방에서 저를 압박해 왔습니다. 숨쉬기도 힘이 들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그곳의 터는 마치 지진이 난 것처럼 계속해서 이리저리 흔들리고 있어서 저는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습니다. 저는 순간 제가 지옥에 떨어진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러나 점점 저의 기억이 살아나면서 제가 바다 속에 던져졌었고 그때 큰 물고기가 저를 삼켰던 것이 생각이 났습니다. 이렇게 기억을 더듬고 있을 때 저를 둘러싸고 있던 사방의 벽이 저를 점점 더 압박해 왔습니다. 귀가 먹먹해져 왔습니다. 저를 태운 그 물고기는 점점 깊은 바다 속으로 내려가는 것 같았습니다. 이렇게 저는 그 물고기에 의해 바다 속 깊은 곳으로 내려가서 산의 뿌리까지 내려갔습니다. 저는 곧 깨달았습니다. 제가 얼마나 산꼭대기처럼 높아져 있었으면 하나님께서 저를 이렇게 깊은 바다 속으로 내리시며 산의 뿌리에까지 낮추시는지를! 그리고 저를 바다에 던진 사람은 사공들이 아니라 하나님이셨음을 말입니다. 저는 마치 지옥과 같은 물고기 뱃속에서 드디어 참다운 기도를 드렸습니다. 저는 주님께 감사의 기도를 드렸습니다. 생각해보니 이렇게 진심으로 우러나는 감사 기도를 언제 드렸는지 까마득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하시는 모든 일이 옳다는 것을 시인하는 기도를 드렸습니다. 이런 기도도 참으로 오랜만에 드리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참으로 교만하게도 제 생각이 항상 옳다고 생각했었습니다. 어느 누구보다도 저의 판단이 옳다고 생각했었고 그 생각이 지나쳐서 심지어는 하나님보다도 제가 옳다고 생각하기까지 했었습니다. 저는 이렇게 교만하기 짝이 없는 사람이었습니다. 저는 기도하면서 하나님께 재 헌신할 것을 고백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저를 다시 사용해 주신다면 다시는 원망하거나 불평하지 않겠습니다. 이제는 하나님께서 어디로 가라 하시든지 그대로 순종하겠습니다.’ 그러자 하나님께서는 저를 물고기 뱃속에서 구원해 주셨습니다. 물고기가 저를 다시 육지에 토해내었던 것입니다. 6. 다시 빛을 보다 눈이 부시도록 밝은 빛이 저를 둘러 감쌌습니다. 얼마나 오랜만에 느끼고 누리는 빛이었던가요! 생각해보니 물고기 뱃속에 있었던 3일뿐만 아니라 저는 너무나 오랫동안 어둠 가운데 있었던 것 같습니다. 저를 다시 빛 가운데로 돌려보내신 하나님께 감사가 되었습니다. 바다에 던져졌고 물고기의 밥이 되어 3일을 뱃속에 있었지만 제 몸은 한 군데도 상한 곳이 없었습니다. 하나님의 특별한 보호하심이었음을 알았습니다. 그리고 그 물고기에게도 참 감사했습니다. 그 물고기는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해서 제가 바다에 던져질 때 저를 받기 위해 신속하게 와서 저를 조심스럽게 삼켰습니다. 그리고 저를 소화시키지 않기 위해 위액을 분비하지 않았습니다. 또한 먹었던 밥을 도로 토해 내라고 하시자 그는 그대로 순종했습니다. 그것도 하나님께서 지시하신 육지에 말입니다. 저는 이방인 선장과 사공들에게 많은 부끄러움을 당했을 뿐만 아니라 물고기 앞에서도 많은 수치를 당해야만 했습니다. 이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에 하나님께서는 두 번째 저에게 사명을 주셨습니다. 다시 한 번 기회를 주신 것입니다. “일어나 저 큰 성읍 니느웨로 가서 내가 네게 명한 바를 그들에게 선포하라.” 제가 어떻게 했을 것 같습니까? 저는 곧바로 일어나서 니느웨로 갔습니다. 그런데 막상 니느웨에 가서 그 원수 같은 사람들을 보자 저의 마음속에서는 또 뭔가가 스멀스멀 기어올라 왔습니다. 그들이 미워지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생각해도 또 도망갈 수는 없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하나님의 말씀을 그들에게 외쳤습니다. “니느웨 사람들이여 들으시오. 하나님께서 당신들의 죄악을 보시고 저에게 이렇게 선포하라고 말씀하셨소. 사십 일이 지나면 니느웨가 무너지리라.” 니느웨는 사흘 동안 걸을 만큼 큰 성읍이었지만 저는 단 하루만 다니며 그렇게 외쳤습니다. 저의 메시지에는 저의 진심이 담기지 않았고 때문에 간절함도 없었습니다. 7. 니느웨 사람들의 놀라운 반응 그런데 놀라운 일이 일어나기 시작했습니다. 너무나 악독해서 아무런 희망이 없다고 생각했던 니느웨 사람들이 금식을 선포하고 높고 낮은 자를 막론하고 굵은 베 옷을 입고 하나님 앞에 엎드리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그 일이 니느웨 왕에게 들리자 왕까지도 보좌에서 일어나 왕복을 벗고 마찬가지로 굵은 베 옷을 입고 재 위에 앉았습니다. 그리고는 이렇게 조서를 내렸습니다. “사람이나 짐승이나 소 떼나 양 떼나 아무것도 입에 대지 말지니 곧 먹지도 말 것이요 물도 마시지 말 것이며 사람이든지 짐승이든지 다 굵은 베 옷을 입을 것이요 힘써 하나님께 부르짖을 것이며 각기 악한 길과 손으로 행한 강포에서 떠날 것이라. 하나님이 뜻을 돌이키고 그 진노를 그치사 우리가 멸망하지 않게 하시리라. 그렇지 않을 줄을 누가 알겠느냐?” 저는 그들의 이런 모습을 보면서 또 한 번 크게 부끄러움을 느꼈습니다. 하나님의 택한 백성이라고 자부하며 우쭐대던 저나 저의 민족과는 다른 그들의 신속한 회개의 모습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우리 민족에게는 엘리야와 엘리사 같은 놀라운 선지자들을 자주 자주 보내셔서 책망하셨지만 우리 민족은 그들의 말을 귀담아 듣지도 않았고 오히려 선지자들을 학대하고 죽이기까지 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이 이방인들은 제가 건성으로 전한 말씀을 듣고 곧바로 엎드렸지 뭡니까? 8. 박 넝쿨 그늘 아래에서 이런 광경들을 보면서도 저는 그 성읍 동쪽 언덕에 앉아 초막 하나를 짓고는 그늘에 앉았습니다. 제가 왜 그랬을까요? 저는 하나님께서 그 성읍을 어떻게 멸하시는지 그 광경을 보고 싶었습니다. 다음 날이 되었습니다. 햇볕이 뜨겁게 내리쬐었습니다. 그런데 제가 심지도 않았는데 박 넝쿨 하나가 밤사이에 크게 자라 저에게 시원한 그늘을 만들어 주었습니다. 저는 그 박 넝쿨로 말미암아 크게 기뻐하였습니다. 니느웨 사람들은 상복을 입고 식음을 전폐한 채 그 뜨거운 태양 아래에 앉아 있는데 말입니다. 다음 날도 변함없이 해는 강하게 내리쬐고 있었고 사막으로부터 오는 뜨거운 동풍까지 불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어제는 그렇게 시원한 그늘을 만들어주던 그 박 넝쿨이 벌레에게 갉아 먹혀 시들어 있었습니다. 저는 그 박 넝쿨로 말미암아 성을 내며 하나님께 이렇게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차라리 저를 죽여주십시오. 사는 것보다 죽는 것이 내게 나으니이다.” 그때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네가 이 박 넝쿨로 말미암아 성내는 것이 어찌 옳으냐?” 저는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내가 성내어 죽기까지 할지라도 옳으니이다.” 9. 비둘기가 아니라 싸움닭 저는 이런 사람이었습니다. 지금 돌이켜보니 저의 모습이 부끄럽기 그지없습니다. 요나라는 저의 이름의 뜻은 비둘기입니다. 여러분이 아시다시피 비둘기는 순결과 평화를 상징하는 새입니다. 그런데 저의 이런 모습은 어떻게 느껴지십니까? 저는 평화의 비둘기가 아니라 싸움닭이었습니다. 하나님 앞에서까지 내가 옳다고 대드는 모습을 보십시오. 지금 돌이켜보니 그때는 제가 제정신이 아니었든가 봅니다. 저는 바다에 던져지는 경험을 했지만 아직도 제 속에는 저의 의와 교만이 도사리고 있었습니다. 참으로 부끄러운 저의 모습입니다. 여러분은 어떻습니까? 여러분 속에도 요나가 들어앉아 있지는 않습니까? 교만하기 이를 데 없는 요나, 싸움닭 같은 요나 말입니다. 여러분은 저처럼 부끄러운 삶을 살지 않기를 간절히 원해서 저는 오늘 여러분 앞에 서서 이렇게 용기를 내어 부끄러운 저의 과거를 이야기해주고 싶었습니다. 10. 마지막 결정타 교만하고 싸움닭 같은 저에게 하나님은 결정타를 먹이셨습니다. “네가 수고도 아니 하였고 재배도 아니 하였고 하룻밤에 났다가 하룻밤에 말라 버린 이 박 넝쿨을 아꼈거든 하물며 이 큰 성읍 니느웨에는 좌우를 분변하지 못하는 자가 십이만여 명이요 가축도 많이 있나니 내가 어찌 아끼지 아니하겠느냐?” 저는 하나님의 이 마지막 말씀 앞에서 완전히 깨어졌습니다. 저는 이 말씀을 들으며 하나님의 마음이 어떠한지를 깨달았습니다. 그리고 제가 어떤 마음을 가지고 그동안 살아왔는지를 분명하게 보았기 때문입니다. 저는 하나님의 선지자였지만 하나님의 마음과는 너무나 다른 마음을 가지고 살고 있었습니다. 하나님은 긍휼과 연민과 사람을 불쌍히 여기고 아끼는 마음을 갖고 계셨습니다. 하나님의 마음에는 긍휼과 사랑이 불타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저의 마음에는 그것이 없다는 것을 저는 뼈저리게 깨달았습니다. 이후에 저는 하늘나라에 와서 천사들로부터 그때 하늘의 분위기가 어떠했었는지 들었습니다. 니느웨 백성들이 회개하자 하늘에서는 하나님과 함께 모든 천군천사들이 크게 기뻐하며 잔치를 벌였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그때 저는 어떤 반응을 보였는지를 돌이켜 보았습니다. 참으로 부끄럽게도 그때 저는 매우 싫어하고 성을 내었습니다. 하늘에서는 모두가 기뻐하는데 저는 분을 주체하지 못했습니다. 왜 이렇게 저는 자주 성을 내었을까요? 저는 너무나 이기적이고 자기중심적인 사람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저는 심지어 하나님조차도 제 생각대로 역사하셔야 직성이 풀리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제 뜻대로 일하시지 않자 저는 차라리 저를 죽여달라고 떼를 썼던 것입니다. 이것이 저의 모습이었습니다. 여러분 속에는 이런 모습이 없는가요? 너무나 육신적이라서 징벌을 받아야 마땅하다고 생각되는 어떤 성도를 하나님께서 선대하실 때 여러분은 이전의 저처럼 분통을 터뜨리며 성을 내고 있지는 않는가요? 하나님께서 니느웨 사람들을 아끼는 마음으로 바라보시며 마음 아파하실 때 저의 마음에는 그들이 없었습니다. 저는 그들보다는 박 넝쿨에 관심이 가 있었고 사람이 아니라 박 넝쿨을 아끼고 있었습니다. 세월이 흘러 주님께서 이 땅에 오셨고 예루살렘 성을 보시고 우시는 모습을 저는 보았습니다. 그때 저는 니느웨 성을 바라보며 울기는커녕 그들이 멸망당하는 모습을 보고자 했던 저의 모습이 떠올랐습니다. 저는 하나님의 선지자였지만 부끄럽게도 저에게는 그런 주님의 마음이 없었습니다. 저는 저의 판단이 옳다는 그 생각의 함정에 빠져 있었습니다. 그것에 눈이 멀어 제 눈에는 사람의 가치가 보이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의 형상을 닮게 창조된 고귀한 사람, 그 사람을 향한 하나님의 마음인 사랑이 없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이것은 저에게 있어 치명적인 결함이었습니다. 모든 문제는 결국 나에게 있었습니다. 우리 사람들은 이것을 깨닫는데 너무나 둔합니다. 하늘나라에서 천사들이 저를 놀리며 종종 하는 말이 있습니다. “요나! 당신을 비롯해서 인간들에게는 불치병 같은 게 하나 있는 것 같습니다.” 제가 물었습니다. “그게 뭐요?” 천사의 답은 이러했습니다. “자신의 문제는 모르고 남 탓만 하는 것 말이요.” 이전의 저 같았으면 저는 아마 이렇게 말해줬을 것입니다. ‘이게 다 당신들 탓이오. 타락한 천사들 말이오.’ 프랑스의 랜드마크인 에펠탑을 아십니까? 이 탑은 1889년 프랑스 혁명 100주년을 맞이하여 건축공학자 귀스타브 에펠이 기념물로 건축한 철탑입니다. 높이가 301m로 하늘에서 보면 아무것도 아니지만 당시 세계에서 가장 높은 건축물이었습니다. 이 탑의 설계도가 나왔을 때 프랑스에서는 많은 예술가들과 작가들이 극렬히 반대했습니다. 뼈대만 앙상하게 드러나 있는 흉물스럽고 추악한 철 구조물로서 도시 미관을 해친다는 이유에서였습니다. 극도로 반대했던 사람 중에는 소설가 모파상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 분이 에펠탑이 만들어진 이후 매일같이 에펠탑 2층에 있는 식당에서 식사를 했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물었습니다. “당신은 에펠탑 건립을 그렇게나 반대해놓고 이제는 왜 여기서 날마다 식사를 하십니까?” 모파상의 대답은 이랬습니다. “파리 시내에서 에펠탑이 보이지 않는 유일한 곳이 여기니까요.” 그렇습니다. 아이러니하게도 자기를 가장 잘 못 보는 사람은 자기자신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늘 문제를 자기자신에게서 찾지 않고 다른 사람에게서 찾습니다. 사공들이 문제가 아니라 제가 문제였습니다. 탕자로 불리는 둘째 아들보다 맏아들이 더 문제였듯이 니느웨 사람들이 문제가 아니라 제가 더 큰 문제였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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