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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속의 무수한 미움들로 괴로워하던 저에게 주님께서 찾아오셨습니다
작성일 | 2021-05-18 19:21:14 | 조회수 | 56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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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중학교 시절부터 인생이 무엇인지 죽음이 무엇인지 그런 부분에 의문이 많았습니다. 그리고 책을 좋아해서 여러 책들을 읽었습니다. 그러나 많은 책들도 저의 의문점에 시원한 대답을 주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저에게 주어진 인생을 열심히, 그리고 착하게 살면 된다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그러던 중 고등학교 시절 성당에 다니는 친구를 만나 함께 성당에 다니게 되었습니다.
꽤 열심을 냈고 또 영세도 받고 ‘바올라’라는 예명도 받았습니다. 가톨릭 학생연합회에 속하여 매주 신부님과 수녀님들과 성경공부를 하였습니다. 그분들은 저에게 늘 착하게 살라고 하시면서 참을 인(忍)자로 마음을 다스리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일주일 동안에 한 착한 일을 발표를 하곤 했습니다. 저는 그것을 위하여 학교화장실에 시를 붙이고 꽃도 갖다놓는 등 여러 가지 착한 일을 찾아다녔습니다. 그때는 착하게 사는 것이 천국에 가는 길임을 알고 열심히 착하게 살려고 무던히 노력하였습니다. 그러나 남편을 만난 이후 성당에 나가지 않게 되었습니다. 세월이 흘러 우리는 결혼을 했고 시댁은 생각보다 어려운 살림살이였습니다. 저는 맏며느리로서 빨리 더 나은 형편을 만들어 보려고 열심히 노력하였습니다. 그리하여 결혼 3~4년 만에 5만원짜리 월세 방에서 반은 빚이었지만 34평짜리 대궐 같은 주택을 갖게 되었습니다. 저는 집만 바라보며 많은 괴로움을 겪으면서 달려왔고 집만 가지면 마음이 천국일 것 같았습니다. 그런데 집을 사고 잠을 청하는데 이상하게도 ‘이것이 전부냐?’하는 이해할 수 없는 허무함에 빠지게 되었습니다. 저는 다시 자신을 돌아보게 되었고 인생에 대하여 고민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시할머니가 연탄가스 사고로 돌아가시고, 그 사고를 가슴 아파 하시던 시어머니도 일 년 후에 갑자기 돌아가셨습니다. 그때 제 나이는 스물아홉이었고 아이는 다섯 살, 세 살이었습니다. 평생 생활력이 없어 시어머니를 무척 고생시켰던 시아버지, 대학생 시동생, 시누이, 중학생이던 막내 시동생. 이 모든 사람들이 이제 나의 책임으로 다가왔습니다. 가족들의 죽음, 그리고 인생의 무거운 무게! 전 정신적인 혼란이 왔고 헛것이 보이고 미칠 것 같은 마음에 죽고 싶은 충동까지 왔었습니다. 시아버지, 그리고 이 모든 것을 나에게 주고 간 시어머니가 너무너무 미웠고 나에게 모든 책임을 미루는 것 같은 남편도 미웠고 원망스러웠습니다. 그러나 내가 해야만 할 일이라고 생각하고 각오를 단단히 하였지만 몸과 마음은 지쳐가고 너무 힘이 들었습니다. 주위의 친척들과 이웃들은 홀시아버지 잘 모시고 시동생들을 잘 돌본다고 칭찬하고 동장으로 계시던 당숙은 진담 반 농담 반으로 효부상이라도 주어야 하겠다는 말까지 했습니다. 그러나 저는 정말 괴로웠고 마음속의 무수한 미움들을 감추면서 웃고 있는 저를 보면서 스스로를 용납할 수 없었습니다. 그 즈음에 우리 집 작은 방에 신혼부부가 이사를 왔습니다. 두 사람이 꽤 다정하게 보였고 빨래를 널기 위해 옥상에 올라갈 때는 꼭 두 사람이 함께 가곤해서 무척 부럽기도 했습니다. 그들은 저에게 복음을 전했습니다. 저는 성당에 다니는 사람이기에 그들이 전하는 복음 듣기를 거부했습니다. 그러나 입만 열면 성경구절이 줄줄 나오는 그들에 대하여 약간의 질투도 나고 부럽기도 했습니다. ‘나도 몇 년을 성당에 다녔는데······.’ 그래서 저는 지치고 아픈 몸을 추스려 다시 성당에 나가기를 결심했습니다. 너울을 쓰고 거룩해 보이는 성당에 나가면 기쁨과 평안을 찾을 것 같았습니다. 그리고 성경도 많이 보고하여 작은방 사람들과 성경으로 대화를 해 보리라 마음을 먹었습니다. 신부님과 수녀님을 뵙고 미사를 보니 마음은 한결 가벼워지는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저는 성경을 열심히 읽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마태복음 1장 25절, “아들을 낳기까지 동침하지 아니하더니 낳으매 이름을 예수라 하니라.” 마태복음 13장 55절, “이는 그 목수의 아들이 아니냐? 그 어머니는 마리아, 그 형제들은 야고보, 시몬, 유다라 하지 않느냐?” 이 말씀들을 이해하기 힘들었습니다. 나는 마리아가 평생 처녀로 사신 성스러운 분으로 알고 있었는데 성경말씀은 분명 그렇지 않은 것 같았습니다. 5년을 성당에 다니면서 한 번도 의심해 보지 않았는데 지금 생각해 보면 하나님은 그때 벌써 저를 구원하실 계획을 갖고 계셨던 것 같습니다. 저는 그 말씀에 대한 의문을 풀고자 성당에 다니는 6촌을 찾아갔습니다. 그런데 그는 “무엇을 그리 깊게 생각하느냐?” 하면서, 마리아는 분명 동정녀이고 그 동생들은 예수의 사촌 아니면 육촌일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저는 그 대답에 만족할 수 없어 고민 고민하다가 작은방으로 그 신혼부부를 찾아가서 질문했습니다. 그 신혼부부는 그들이 예수의 친 형제가 맞다며 직접 보라고 하면서 쪽지 성경 요한복음을 주었습니다. 저는 그 때 속과 겉이 다른 제 자신을 이해하고 용서할 수 없어 마음이 아프고 고민하고 있을 때라 받아 온 쪽지 성경 요한복음을 다 읽기도 전에 마음의 변화가 왔습니다. 요한복음 1장 29절, “이튿날 요한이 예수께서 자기에게 나아오심을 보고 이르되,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양이로다.” 요한복음 5장 24절,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말을 듣고 또 나 보내신 이를 믿는 자는 영생을 얻었고 심판에 이르지 아니하나니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느니라.” 세상 죄를 지고 갔으면 나의 죄도 지고 갔다는 것 아닌가? 나는 믿고 싶었고 또 믿어졌습니다. 지금 생각해 보아도 그것은 기적이었습니다. 나는 알 수 없는 기쁨과 떨림으로 금요 가정집회를 하고 있는 작은 방으로 가서 믿는다고 했습니다. 다들 웃으면서 좀 더 기다려 보자고 했고 이틀 뒤(1980. 7. 25) 침례식을 한다고 해서 두 아이를 데리고 따라갔습니다. 그 날 허윤욱 형제님이 참석하시어 로마서 설교를 하셨는데 나는 그 모든 말씀에 아멘이 되었습니다. 로마서 3장 10절에서 18절까지 ‘의인은 없다’. 로마서 6장 11절 “이와 같이 너희도 너희 자신을 죄에 대하여는 죽은 자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께 대하여는 살아있는 자로 여길지어다.” 6장 18절 “죄로부터 해방되어 의에게 종이 되었느니라.” 모든 말씀이 믿어져서 간증을 하니 성도님들이 놀라면서 무척 기뻐했습니다. 그로부터 두 달 뒤인 1980년 9월 28일. 나도 침례를 받게 되었습니다. 무거운 죄의 짐과 죄악들로부터 해방이 되었고 매일 죽고 싶었던 나는 하루하루가 너무나도 행복했습니다. 그러나 애들과 함께 교회를 갔다 오면 가족들은 점심도 드시지 않고 화가 나 있었습니다. 시어머니 돌아가신지 일 년도 안 되어서 종교를 바꾸고 이상한 조그마한 교회에 다닌다고 야단들이고, 남편도 다시는 작은방에 사람을 넣지 않겠다고 옆방 신혼부부에 대하여 원망이 많았습니다. 그 때부터 저는 믿음의 기쁨 속에서도 눈물이 마르지 아니하였고 믿음을 지키기 위하여 많은 핍박을 받고 이를 참아내어야 했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항상 저를 이끄시고 또 업고, 잡고 늘 저와 함께 하셨습니다. 매주 금요일마다 남편구원을 위하여 기도요청을 하였고 교회는 기도해 주었습니다. 그렇게 하기를 15년. 마침내 남편이 주님께 돌아왔습니다. 저는 너무 행복하고 감사했습니다. 이제 우리는 주님을 향하여 같이 가게 되었습니다. 지금은 시골에서 작은 꽃 하나에도 하나님의 솜씨에 감동을 받고 감탄을 하며 어린아이 같은 순수한 마음, 자족하는 마음으로 오늘도 우리는 주님 안에서 행복하게 살고 있습니다. 주님께서 자녀들을 향한 우리 부부의 기도도 언젠가는 들어주시리라 믿으면서 우리 부부는 오늘도 기도합니다. 주님, 감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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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 세월동안 종교와 자기 의에 매여 살던 사람이 새롭게 눈을 떠서 영생을 얻는 구원간증은 언제 들어도 감동입니다.
자매님의 영안을 열어주시고 지금까지 신실하게 믿음의 길을 걷게하신 하나님께 감사를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