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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강한 그리스도인(그리스도인과 율법)
작성일 | 2022-05-03 15:30:29 | 조회수 | 32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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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모데전서 1:8~11, 새번역] 우리가 알기로 율법은, 사람이 그것을 적법하게 사용하면, 선한 것입니다. 율법이 제정된 것은, 의로운 사람 때문이 아니라 ... 무엇이든지 건전한 교훈에 배치되는 일 때문임을 우리는 압니다. 건전한 교훈은 복되신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복음에 맞는 것이어야 합니다. 나는 이 복음을 선포할 임무를 맡았습니다. Οἴδαμεν(현완능직1복) δὲ ὅτι καλὸς(남단주) ὁ νόμος(남단주) ἐάν τις(남단주) αὐτῷ(남단여) νομίμως(부사) χρῆται(현중직3단), 하지만 우리는 율법은 좋은 것이라 알고 있다. 만약 어떤 사람이 그것을 법적으로 올바르게 사용한다면, εἰδὼς(분사) τοῦτο, ὅτι δικαίῳ(남단여) νόμος(남단주) οὐ κεῖται(현완중/수직3단), ... (이것을 안다.) 왜냐하면 율법은 정직한 자에게 세워진 것이 아니라 ... καὶ εἴ τι(남단주) ἕτερον(중단주) τῇ ὑγιαινούσῃ(분사) διδασκαλίᾳ(여단여) ἀντίκειται(현완수직3단), 어떤 다른 것이 건전한 교훈(메타포; 건강한 사람; 이것을 지키지 않으면 아픈 사람이다.)에 반대되는 일 때문임을 안다. κατὰ τὸ εὐαγγέλιον(남단목) τῆς δόξης(여단여) τοῦ μακαρίου(남단여) θεοῦ(남단여), ὃ ἐπιστεύθην(부과중/수직1단) ἐγώ.(단주) 건전한 교훈은 복되신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복음에 따라야 한다. 나는 복음을 맡게 되었다. 묵상 내용 디모데가 에베소에서 사역하고 있을 때 많은 거짓 교사들이 있었다. 선행 구절들을 보았을 때, 그 곳에는 두 부류의 거짓 선지자들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율법주의를 주장했던 거짓 교사들과 이방 사상을 주장했던 거짓 교사들이다. 바울은 디모데를 에베소에 남겨둔 목적을 설명하며, 그들(거짓 교사들)을 명하여 다른 교훈을 가르치지 않도록 하라고 권면한다. 그들은 이방의 사상들을 주장하기도 하였으며, 율법―특히 모세의 십계명; 일반적인 도덕법으로 보는 견해도 있음―의 목적과 어긋난 주장을 하면서 믿는 성도들이 신화와 끝없는 족보에 빠지게 하였다. 이것은 복음의 목적과도 어긋났다. 그러면서 바울은 율법이 적법하게만 사용된다면 그것은 좋은 것(καλὸς, 선한, 아름다운)이라 말했다. 율법은 의로운 사람을 위해서 세워지지 않았다. 바울이 다른 편지(롬 7:7~25; 갈 3:23~4:7)에서도 주장한 것과 같이 율법은 죄인이 자신의 죄를 깨닫게 하도록 주어진 것이다. Linda Belleville은 율법의 “적법한 사용”을 무법자를 위한 사회적 구속의 것으로 정의하였다. 이미 의롭다고 칭함을 받은 그리스도인의 삶에 대한 도덕적 기준의 개념은 옛 계명이 아닌 새 계명―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요 13:34)―에 있기 때문이다. 이것은 예수님이 말씀하신 율법의 본 뜻(마 22:34~40)이다. 그러므로 복음은 모세의 율법에서 발견되는 것과 어긋나지도 않는다. 중요한 것은 율법과 건전한 교훈은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복음에 따라 사용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복음의 목적에 맞게 사용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그리스도인은 율법을 어떻게 사용해야 하는가? 어릴 적에 나는 종종 이런 고백을 하곤 했다. “만약 구약시대에 내가 살았다면, 나는 이미 죽었거나, 제사를 위한 제물들을 바치느라 빈털터리가 되었을 거예요.” 그러나 이 말의 중심을 들여다보면, 그리스도인 다운 삶의 도덕적 기준을 심각하게 오해하고 있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그리스도인의 삶의 수준은 율법과 비교할 때 절대 낮은 위치에 있지 않다. 그리스도인 다운 삶의 도덕적 기준은 이미 율법의 기준을 충족했다. 그리스도인은 율법 아래 있지 않고, 은혜 아래에 있다. 그러나 그것이 율법을 무시하는 삶을 의미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리스도인의 삶의 수준은 율법의 요구를 만족하는 삶이다. 예수님을 닮아 가는 삶이 율법의 완성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은 율법의 정신을 가지고 살아야 한다. 나는 영적으로 건강한 사람인지 돌아본다. Linda Belleville, “Commentary on 1 Timothy,” in Cornerstone Biblical Commentary: 1 Timothy, 2 Timothy, Titus, and Hebrews, vol. 17 (Carol Stream, IL: Tyndale House Publishers, 2009) Douglas Mangum and E. Tod Twist, 1 Timothy, ed. Douglas Mangum and Derek R. Brown, Lexham Research Commentaries (Bellingham, WA: Lexham Press, 201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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