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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락하는 곳에 길이 있다(구원간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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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2021-05-17 18:55:18 조회수 554
  탄탄대로에서 추락하다
 
  지금도 살아 계셔서 우주와 역사를 주관하시는 하나님 아버지의 놀라운 구원계획에 감사하며 나의 구원 간증을 적는다. 쑥스러운 이야기지만 나는 초중학교 시절을 우등생으로 보냈으며 고등학교도 상위권 성적을 유지하며 지냈다. 전교 회장, 부회장, 학급 반장 등을 맡아 했으며 착하고 총명하다는 칭찬도 선생님, 부모님, 이웃 어른들, 친척들 그리고 친구들로부터 많이 듣고 자랐다. 이렇듯 나는 무난하게 탄탄대로를 달리고 있었다.
  그러나 고등학교를 졸업할 무렵에 나에게 큰 이변이 일어났다. 지금까지의 탄탄대로에서 깊은 낭떠러지로 추락하고 만 것이다. 그것은 대학 입시에서였다. 나는 나의 기대치와 그동안의 평균 성적에 20점이나 미달된 점수를 통보받고는 눈앞이 캄캄해지고 말았다. 여러 고민을 하다 어쩔 수 없이 나는 전혀 내 마음에 차지 않는 지방의 이름 없는 대학교에 들어가게 되었다. 이럭저럭 생활하다 한 학기를 마치고는 휴학을 하고 다시 입시 공부를 하기 시작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그 학교에 만족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번에도 나는 원하는 대학에 들어가지 못했다. 이로 인해 나는 자신에게 크게 실망하고, 또한 다른 사람들에게도 창피해서 밖으로 나다니지도 못하고 집안에 틀어박혀 있었다. 주변의 사람들은 누구나 내가 서울의 상위권 대학을 나와서 판검사나 의사를 하리라 기대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나는 그때서야 비로소 내가 얼마나 무능하고 연약하며 보잘것없는 존재인가를 생각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동안 내가 얼마나 자신만만해 했었고 잘난 체 했었는지 알게 되었다. 또한 그것이 교만이었다는 것도 깨닫게 되었다.
 
  인생이란 무엇일까?
 
  이를 계기로 집에 혼자 있으면서 그동안 생각해 보지 못했던 여러 가지를 생각하게 되었다.
  ‘산다는 것이 무엇일까?’
  ‘어떻게 사는 것이 진정 가치 있는 삶일까?’
  ‘공부가 인생의 전부일까? 공부만 잘하면 성공한 인생일까?’
  ‘지금의 어른들은 학창 시절에 성적이 어떠했을까? 상위그룹은 그렇게 많지 않았을텐데
  ‘무얼 위해 살아야 할까?’
  ‘나는 어떻게 존재하게 되었을까?’
  ‘절대적이고 완전하며 영원한 존재는 있는 것일까?’
  ‘죽음이란 무엇이며, 사람들은 왜 다 죽는 것일까? 그리고 죽음 이후에는 무엇이 있을까?’……
  정말 인생에 있어서 가장 근본적이고 중요한 의문들이 나를 사로잡고 있었다.
 
  실패는 성공의 어머니
 
  돌이켜보면 대학 입시의 실패는 하나님께서 나에게 복 주시기 위한 축복의 통로였다. 할렐루야! 나의 실력으로 내 인생을 성공적으로 만들 수 있다는 자만심에 가득 차 있던 나였다. 아니 이미 그렇게 된 것처럼, 되지도 못했으면서 무언가 된 것처럼 생각하며 살던 나였다. 이런 나를 하나님께서 실패를 통해 낮추시고 인간의 유한성을 깨닫게 하시며 결국은 영원한 존재를 찾게 하셨던 것이다.
 
  ‘실패는 성공의 어머니란 말이 이런 것이었던가! 절대자의 존재에 대한 생각에 이르자 나는 성경을 읽게 되었다. 태어나서 처음 읽어보는 책이었다. 그러나 진리는 쉽게 깨달아지지 않았다. 그때의 일기장에는 도덕적으로 내 마음을 사로잡는 성경 구절들만 잔뜩 적혀 있었다.
 
  “누구든지 네 오른편 뺨을 치거든 왼편도 돌려대며 또 너를 고발하여 속옷을 가지고자 하는 자에게 겉옷까지도 가지게 하며 또 누구든지 너로 억지로 오 리를 가게 하거든 그 사람과 십 리를 동행하고
 
  성경이 어렵게 느껴졌다. 어차피 학교도 휴학 중이라 시간도 많아 이번에는 부산(당시 내가 있던 곳)에서 제일 큰 도서관을 찾았다. 그곳에서 신()에 관계된 책들을 볼 참이었다. 이런저런 여러 권의 책을 골라 읽었다. 그러나 이러한 책들은 나를 더 당황스럽게 만들었다.
 
  “갑자기 방안에 강한 빛이 들어왔다. 그래서 나는 하나님을 믿었다.”
  “운동장에 서 있는데 눈물이 막 쏟아졌다. 그때 나는 신을 인정했다.”
  “기도하니까 병이 나았다. 그래서 나는 믿는다.”
 
  이러한 내용들로 그 책들은 채워져 있었다. 그러나 이런 것들은 나를 설득하기에 충분치 못했다. 너무나 주관적이고 감정적이며 객관성이 결여되어 보였다. 그러면서도 나는 신의 존재에 대한 의문을 떨쳐버릴 수가 없었다. 신이 없다면 나의 존재가치와 존재목적도 없었기에 말이다.
 
  하늘나라 대사와의 만남
 
  그러던 중 어느 날 휴학한 학교를 찾았다. 그곳에서 입학 동기생을 만났는데 그 친구가 나를 만나자마자 하나님을 믿느냐고 물었다. 나는 그 질문이 얼마나 반가웠는지 모른다. 내가 너무나 고민하고 있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무언가 해답이 있을 것 같아서 얼마나 마음 설레었는지 모른다. 그래서 나는 그 친구에게 많은 관심을 보이며 하나님이 있다는 것을 증명해 보라고 했다. 그 친구는 곧바로 성경을 꺼내서 앞뒤를 능숙하게 펼쳐가며 하나님이 계시다고 열변을 토했다. 하지만 나는 성경 자체가 믿어지지 않았고, 그 친구는 계속 성경만으로 나를 설득하고 있었다.
 
  ‘이 성경이라는 책도 불완전한 사람이 썼을텐데
  일주일 정도를 그 친구와 설전을 벌였으나 의심 많은 나는 그 친구의 말을 그대로 믿지 못하고 만남을 중단하기로 했다. 그러자 그 친구는 나에게 책을 몇 권 주었다.
 
  한 동안을 무관심하게 지내다가 도저히 그냥 넘길 수가 없는 문제라 생각되어 그 친구가 준 책을 읽기 시작했다. 삶의 목적과 가치를 확인하기 전에는 이 깊은 낭떠러지에서 다시 일어설 수 없다고 판단되었기 때문이다.
  기도하는 마음으로 책을 읽어 내려갔다. ! 하나님께서 나의 이 간절함을 보셨을까? 그 책들은 나의 갈증을 마치 껍질을 벗기듯 하나씩 하나씩 풀어주기 시작했다. 하나님의 놀라운 은총이 나에게 임했다. 하나님께서 내 마음에 빛을 비추신 것이다. 자신을 선한 사람이라고 생각하며 교만의 높은 산봉우리에서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앉아있던 나에게 하나님은 나의 속마음이 얼마나 더러운가를 알게 하셨다. 지금까지 은밀히 포장되고 감추어져 왔던 지난날의 죄들이 양심을 통해 들려오기 시작할 때 나는 내가 아주 심각한 죄인임을 부인할 수 없어 괴로웠다. 영혼의 존재와 내세, 성경의 사실성 등이 그 책들을 통해서 믿어졌다.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신 것이 바로 나의 죄 때문이며 나의 죄가 한 번에 영원히 씻겨진 것을 깨닫게 되었을 때는 정말 온 천하를 얻은 기분이었다.
 
  이제 대학 입시에 실패한 것으로 인해 나는 더 이상 실패자가 아니었다. 오히려 그와는 정반대로 이제 나는 큰 성공자라는 생각이 나를 압도했다. 이젠 어느 누구도 부럽지 않았다. 나는 이 세상에서 가장 값진 것을 얻은 것이었다. 지금까지의 모든 죄를 한꺼번에 완전히 용서받았으며 앞으로 짓게 될 죄의 값까지 미리 갚아 놓으신 사실을 알게 되었다. 천지를 창조하신 하나님의 아들이 바로 나를 위해 돌아가신 것이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완전한 나라, 평화의 나라, 영원한 나라인 하늘나라를 준비해 놓고 계신 것이었다. 뿐만 아니라 하나님께서 나를 하나님의 자녀라고 말씀하시는 것이었다. ! 나는 겨우 수 십년 있다가 사라지는 것이 아닌 영원한 것을 얻은 것이다. 기독교에 대해 지금까지 알고 있었던 오해들이 한꺼번에 눈 녹듯이 사라져 갔다.
 
  이제 내가 무엇을 위해 살아야 할지, 무엇이 가장 가치 있는 것인지가 자명해졌다. 이 놀라운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의 소식을 전하는 삶을 살고 싶은 마음이 자연스럽게 가슴을 채우기 시작했다. 이때부터 나의 인생은 새로운 시작이었다. 나의 어깨에는 새로운 힘이 솟았고 세상이 아름다워 보이기 시작했다. 하나님, 감사합니다. 주님, 감사합니다. 제가 무엇이기에 이토록 죽기까지 저를 사랑하셨습니까?
 
  주님과 함께하는 새로운 인생길
 
  198355! 이날은 내가 다시 태어난 날이며 내 인생의 전환점이자 출발선이었다. 그때 이후로 지금까지 38년간 주님은 나의 모든 것이 되셨다. 주님으로 인해 내 인생은 무의미하지 않으며, 주님으로 인해 내 삶은 허무하지 않다. 생각해 보건대 주님을 몰랐더라면 나는 허무주의나 쾌락주의, 아니면 패배주의나 출세밖에 모르는 그런 사람이 되어있지 않았을까 하고 생각해 본다.
 
  어느 성실하고 부지런한 시계가 있었다. 이 시계는 하루하루 순간순간을 최선을 다해 살아가는 것이 가장 잘 사는 길이라 생각하며 열심히 살고 있었다. 남들이 놀 때 같이 놀고 남들이 쉴 때 같이 쉬어서는 성공할 수 없다고 생각하며 쉬지도 않고 일했다. 주변을 둘러보거나 고개를 들어 하늘의 구름과 저녁노을을 감상할 여유를 갖는 것은 사치스러운 것이라 생각했다. 때때로 앉아있거나 아예 누워있는 친구도 있었고, 아주 규칙적으로 움직이는 친구도 있었지만, 이 시계는 이런 친구들처럼 살 수는 없었다. 더 빨리 더 빨리 최선을 다하지 않는 친구들이 미련해 보였고 이런 친구들과 자신을 비교해 보면서 스스로 우쭐해 했다. 그리고 자기가 늘 앞서가는 것에 대해서 대단한 자부심을 가지고 살아가고 있었다.
  
그런데 이 시계의 주인은 이처럼 부지런한 시계를 별로 달가워하지 않았다. 주인은 자주 고개를 갸웃거렸으며, 시계가 땀 흘려 저만치 가 있으면 주인은 종종 그를 다시 뒤로 옮겨놓곤 했다. 자신은 전혀 병들지 않은 것 같은데 주인은 이 시계를 몇 번이나 병원에 데려가기도 했다. 이럴 때마다 이 시계는 이렇게 지체된 시간이 아까워 이를 만회하기 위해 더 열심히 달려갔다. 이렇게 열심을 내면 낼수록 주인은 이 시계를 기뻐하기는커녕 자주 캄캄한 책상 서랍 속에 넣어두고는 함께 데리고 다니지도 않았다. 그 뒤 이 시계는 몇 번 더 병원을 다녀와서는 어느 날 쓰레기통에 던져지고야 말았다.
 
  나는 바로 이 시계처럼 살아왔다. 시계는 분명 존재 목적이 있는 것이고 그것은 다름 아닌 시간을 정확하게 알려주는 것이 아니던가! 멈추어 서거나 느려서도 안 되지만 빨리 간다고 좋은 시계가 아닌 것은 분명한 것이다. 이 시계는 자기가 열심히 앞서가고 있는 것으로 출세가도를 달리고 있다고 생각했을지 모른다. 하지만 그것은 자신의 존재 목적을 벗어난 열심이기에 헛된 것이었다.
 
  많은 사람들이 이처럼 자신의 존재 목적을 모르고 그냥 열심만 가지고 살아가고 있는 것은 아닌가? 나름대로 목적을 가지고 산다고 하는 사람들도 이런저런 저마다의 목적일 뿐 정말 자신을 계획하고 만드신 분의 목적과 일치하는 것일까? 만약 그렇지 않다면 그것이 전정 올바른 목적일까? 시계가 자신이 왜 존재하는지 알고 싶으면 시계를 설계하고 만든 사람에게 물어보면 제일 정확하게 알 수 있을 것이다. 마찬가지로 사람이 왜 존재하는지, 그 목적이 무엇인지를 알고 싶으면 사람을 만드신 하나님께 물어보아야 하지 않겠는가?
 
  나는 하나님의 책인 성경에서 그 해답을 찾을 수 있었다. 이 얼마나 감사한 일인가! 나는 이제 주님으로 인해 무언가에 쫓기는 삶이 아닌, 한 발 뒤에서 인생을 바라다보며 웃을 줄도 아는 사람이 되었다. 궁핍에 처하나 풍부에 처하나 만족하고 감사할 줄 아는 마음의 여유도 갖게 되었다. 나를 만드신 분의 뜻을 좇아 사는 기쁨과 긍지도 갖게 되었다. 또한 썩지 않는 소망을 가지고 살게 되었다. 그리고 날마다 주님과 교제하며 걸어가는 이 특권이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가장 큰 기쁨이다.
 
  이 글을 읽는 당신은 어떻습니까? , 지금 깊은 절벽 아래에 떨어져 절망 가운데 있지는 않습니까? 삶의 목적은 발견하셨습니까? 방황하고 계시지는 않습니까? 목적을 가지고 우리를 만드신 주님을 믿지 않으시렵니까? 그것이 인생의 본분이요 진정한 행복의 길이죠!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 말을 듣고 또 나 보내신 이를 믿는 자는 영생을 얻었고 심판에 이르지 아니하나니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느니라.”(요한복음 524)
  “내가 그들에게 영생을 주노니 영원히 멸망하지 아니할 것이요 또 그들을 내 손에서 빼앗을 자가 없느니라. 그들을 주신 내 아버지는 만물보다 크시매 아무도 아버지 손에서 빼앗을 수 없느니라.”(요한복음 1028,29)
  “아버지께서 내게 주시는 자는 다 내게로 올 것이요 내게 오는 자는 내가 결코 내쫓지 아니하리라.”(요한복음 6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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